2005년 7월,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국 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정책금리를 인상했는데도 시장금리가 오히려 떨어진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책금리를 1년 여간 줄기차게 올렸는데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0.5%포인트 하락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전례가 없는 이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그린스펀의 수수께끼(Conundrum)라 불렀다.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뿐만 아니라 물가안정 속에 경기호황이 지속되는 '골디락스',경기침체 없는 고(高)성장이 수년째 지속되는 '신경제' 등 기존 경제학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지금 보면 무분별한 주택대출과 파생상품 거품에 상당 부분 기반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당시 미국 경제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채권값이 하락(금리 상승)해도 외국 중앙은행들의 미국채 매수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정책금리를 올려도 경제가 끄떡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통화긴축 기간에도 시장금리가 안정됐고 주가도 올랐다. 미국 경제가 튼튼했기 때문에 FRB는 16회 연속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것만으로도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고채 3년물과 5년물 금리는 올해 초에 비해 1%포인트나 올랐다. 금리인상 가능성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취약한 탓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가계와 기업들은 변동금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90% 이상이 변동금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산금리'가 높아진 것도 새로운 위험 요인이다. 요즘 주택담보로 돈을 빌리면 CD금리에다 3%포인트 넘는 가산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직장인 신용대출의 경우 가산금리만 6%포인트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급격한 금리하락에 대비하지 못한 은행들이 손실의 상당 부분을 신규 대출자들에게 떠넘긴 결과 금리인상의 직격탄을 맞게 된 사람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은행들은 금리 인상설이 나돌자마자 연 4% 이상 이자를 주는 고금리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당겨놓겠다는 심산이다. 안정성을 가장 중시해야 할 은행들마저 모험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곳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오는 9일 금리결정 회의를 갖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런 사정들을 다 고려해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급격한 금리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씩 금리 인상)'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시장의 쏠림을 더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17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지수가 1600 아래로 급락했고 환율도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더블딥(경기상승 후 재차 하강) 공포가 재차 부각되고 있다. 금리인상 카드를 쓰는 것은 물론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지부터 금통위는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