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공부하는 어느 외국인이 한국말은 정말 어렵다면서 막대기,작대기,지팡이가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작대기는 긴 막대기,막대기는 가늘고 가름한 나무토막,지팡이는 보행을 도우려고 짚는 막대기라고 돼있다. 예문을 들어 설명해 본다. 어떤 노인이 '작대기'를 집어 들고 길에 나와있는 두꺼비를 툭툭 건드려 쫓은 후 손에 든 '막대기'를 '지팡이'삼아 힘겹게 산길을 올라간다고.조금 이해된다는 표정이나 만족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김주영 선생님의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를 재미에 푹 빠져 단숨에 읽었다. '똥친 막대기'는 측간(옛날 화장실)에서 인분을 고르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기다. 그래서 아주 더럽혀진 물건을 표현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요즈음 세대에게 재래식 변소의 똥친 막대기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작가는 백양나무 곁가지를 주인공(나)으로 의인화해 농부의 손에 의해 꺾여져 암소 엉덩이와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로,똥친 막대기로,낚싯대로 변신했다가 결국 봇도랑의 개흙 위에 뿌리내리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인생유전(人生流轉)에 비유하려는 것은 아닐까.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는 수령이 약 11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은행나무가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 한낱 막대기에 불과하던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천년이 넘는 모진 세월을 지탱해 오는 동안 신라의 삼국 통일과 고려,조선왕조의 흥망성쇄를 지켜보았고,근대사의 굴곡을 한눈에 꿰뚫으며 지금까지 싱싱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행자 생활을 거쳐 계를 받고 수십 년 동안 혹독한 수행과 고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른 큰스님의 일생에 비유된다.

충청도 부여의 한 산골마을,4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있으나 빈집이 열 채나 된단다. 이 마을 경로당 문 앞에는 10여 개의 막대기가 벽에 기대 세워져 있다. 옹이가 숭숭한 채로 손잡이마저 다듬어지지 않은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보행이 불편한 이곳 노인들의 경로당 나들이길 동반자요 안내 지팡이다. 집집마다 노인들만 있고 자식들은 멀리 객지에 나가 명절 때나 한두 번 다녀갈 뿐,이들 노인들에게는 하찮은 막대기가 열 자식이 못하는 효도를 하고 있다.

이들 막대기는 앞으로 더 이상 변신의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을 테고,은행나무처럼 영화를 누릴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부러지면 아궁이에 들어가 재로 변할 뿐이다. 나 역시 관절염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시는 노모가 계시다. 경로당 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선 저 막대기들이 더없이 효성스럽고 애착이 가는 것은 이제야 철이 들기 때문일까.

김순진 < 놀부NBG 회장 kimsj@nolb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