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잠해졌던 은행권 인수합병(M&A) 시나리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조만간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각에 착수하고,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작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KB와 하나금융지주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증자에 나선 점도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금융 지분매각 조만간 착수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가 전체 지분의 73%를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소수지분(경영권과 관련된 50%+1주를 제외한 23%) 매각 안건을 이르면 이달 안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50%를 제외한 지분 중 7%를 블록세일 방식으로 우선 매각한 뒤 나머지 지분도 추가로 판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우리금융의 경영권 매각을 위한 지분 축소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최근 "우리금융의 주가가 많이 올랐다"면서 지금이 민영화 적기임을 강조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최대주주인 외환은행도 다시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존 그레이켄 회장은 지난 1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지분을 6개월에서 1년 내에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론스타펀드가 시한까지 밝히며 매각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외환은행 매각 작업은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 또는 외환은행 인수에 나설 후보자로 하나금융지주,KB금융지주,산업은행을 꼽고 있다.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하나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그룹의 성장 전략으로 M&A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이 같은 관측을 시인했다. 최근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마무리한 KB금융지주와 이달 중 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앞둔 산업은행도 후보군 중 하나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내년 이후

금융권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형 은행들의 주인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M&A를 통한 은행권 재편을 상당히 먼 얘기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시가총액이 12조원대로 전체 지분의 30%만 보유한다고 해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5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은행도 시가총액이 9조원대로 전체 지분의 30% 이상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되려면 4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현재 거론되는 인수자와의 주식교환 방식도 지주회사가 다른 지주회사를 지배하려면 100% 지분을 사야하는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우리금융을 갖기 위해서는 13조원을 주고 지분을 전량 인수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분보유 한도를 대폭 낮춰주는 방법도 있지만 정치적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부담이다.

국민연금이나 포스코 등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연기금의 경우 또 다른 형태의 정부소유라는 점에서 부정적 여론이 크고,산업자본도 투자메리트가 떨어지는 은행 경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규모 자본조달이 가능한 외국계 금융회사나 사모펀드도 글로벌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국내 은행 인수전에 뛰어들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논의를 떠나 우리금융지분 7%를 연내 매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일단은 공자위가 우리금융 지분매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매각가격 하한선이라도 낮게 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김인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