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고두현 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중)

가을 볕이 알알이 익어가는 남해의 바닷가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층층이 짙어지는 다랑논의 황금빛 결실과 갯마을 물들이는 단감빛 노을이 고향의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이즈음 그 감정선이 가장 뚜렷해지는 곳은 상주면 두모(드므개)마을.서포 김만중의 유허지인 노도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작은 갯마을이다. 포구의 모습이 궁궐 처마 밑에 물을 담아두었던 큰 항아리 '드므'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Take 1 코스모스와 메밀꽃 위의 가을

벽련마을에서 미조 방향 77ㆍ19번 국도 변의 두모마을 북쪽 진입로.오른쪽 경사진 길섶에 무리지어 핀 코스모스로 인해 마음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도발적인 색깔의 금계국이나 노랑 코스모스와 달리 작은 바람에도 하늘하늘 흔들리는 하양,분홍의 꽃잎이 영락없는 토종 코스모스라서 더 반갑다. 코스모스 무리 옆은 손바닥 만한 다랑논.등이 많이 굽은 한 할아버지가 경운기에 싣고 온 볏짚을 부려 다랑논 구석구석에 깔고 있다. 볏짚을 말린 뒤 거둬들여 쇠여물로 쓰거나,추석 지나 적당한 때 그대로 갈아엎어 마늘농사를 위한 퇴비로 하거나(조혜연 문화관광 해설사),둘 중의 하나라는데 이유야 어찌됐건 코스모스와 다랑논,경운기와 할아버지의 조합이 초가을의 고향마을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두모마을의 가을은 하얀 메밀꽃 위에도 가득 내려와 있다. 코스모스 핀 큰 길 가에서부터 바닷가 마을 한가운데까지 이어진 다랑논의 이 위쪽 일대가 메밀꽃으로 새하얗다. 가산 이효석의 봉평 메밀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할까. 정말 굵은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 한데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주변 다랑논과의 색감조화가 절묘하다.

"논을 갈 사람이 없어 놀리는 땅에 메밀을 심었어요. 봄에는 유채꽃으로 가득 덮이지요. 사람들이 경치가 예쁘다며 많이 들르네요. 남해의 16개 체험마을 중 하나예요. 사시사철 갯마을 체험이 가능합니다. 4~9월엔 바다체험 위주로 하고 요즘은 농사체험을 해요. 벼를 거둬들이고 마늘도 파종해보는 것이죠."(이광석 두모 녹색농촌체험마을 사무국장)

마을 안까지 이르는 다랑논 사이 농로 변의 둥근이질풀이며 닭의장풀 등 우리 들꽃들도 두모마을의 초가을 풍경을 완성하는 주인공.갯바람을 맞아서인지 말갛게 핀 꽃잎이 더 수수하니 예뻐보인다.

Take 2 관음기도와 요트체험

다랑논이라면 가천 다랭이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비탈에 108층 계단식 논이 조성돼 있는 곳이다. 엄마가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어르는 지형이라는데,회음부 부위에 암수 미륵바위가 있다. 이 암 미륵바위의 볼록한 배에 필요한 양수를 공급한다는 뜻에서 더할 가(加) 내 천(川)자를 써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수사람 똥거름으로 척박한 바닷가 비탈에 일군 다랑논을 부쳐먹던 남해 사람의 '똥배기질'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해마늘 싹이 돋는 봄 풍경이 좋다.

남해금산 보리암에도 들러보자.보리암은 국내 3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 들어 백일기도 끝에 왕위에 올랐다는 얘기가 전한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면 산 전체에 비단을 둘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제로는 비단 금(錦)자를 내려 금산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원효가 세운 보광사 이래로 불렸던 보광산이 금산이 된 까닭이다. 일출에 맞춰 오르는 게 제일 좋다. 제2 주차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보리암이다. 보리암을 배경으로 상주 은모래해변과 남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금산 정상 길도 쉽다.

미륵이 돕는다는 미조에서 물건(?)들이 많다는 물건리까지의 물미해안도로 풍경을 놓칠 수 없다. 천연기념물인 물건리 방조어부림 등 방풍림이 해변 풍경의 멋을 더해준다. 물건항에 생긴 남해군 요트학교도 관심을 끈다. 간단하게 태킹(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요트를 돌리는 일) 방법만 익히면 누구나 딩기요트를 몰고 나가 '새로운 바다'를 즐길 수 있다.

남해=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남해에 가면 멸치요리를 맛보자.삼동면 지족리 삼동우체국 앞에 있는 우리식당(055-867-0074)의 멸치요리를 알아준다. 죽방렴 생 멸치를 초고추장에 무친 멸치회무침(대 3만원),이렇게 큰 멸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큰 멸치구이(8000원),생 멸치에 야채와 고춧가루를 넣어 조린 멸치쌈밥(7000원)이 멸치요리 삼총사.물건리의 햇살복집(055-867-1320)은 복요리 전문.졸복탕(1만1000원) 국물맛이 시원하다.

물건리에 남해군 요트학교(070-7755-5278)가 있다. 4시간 체험코스 4만원.10~11일에는 제2회 보물섬컵 요트대회와 축제가 열린다. 시인 황동규 고두현,소설가 성석제 등이 함께하는 1박2일 코스의 '남해 문학기행'(02-2266-2132)도 펼쳐진다.

남해힐튼리조트&스파(055-863-4000)는 리조트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라고 할 만큼 근사하다. 11월4일까지 개관 3주년 기념 패키지를 판매한다. 2인 기준 33만원.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8601,www.tournamha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