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G20회의 유치한 한국, 국제사회 위상 높아져
[Cover Story] G5에서 G20까지 …세계 정세 이끌어 온 ‘G의 변천사’
지난달 24~2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한국 중국 등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급부상시켰다.

이번 회의에서 신흥국의 목소리가 합의안에 대거 반영되면서 세계 정치와 경제 흐름의 주도권이 기존 선진국 중심의 G8(선진 8개국 ·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에서 G20으로 옮겨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합의 내용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개도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G20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지분과 의결권을 각각 2011년 1월,2010년 봄까지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IMF에서는 선진국들의 지분을 최소 5%,세계은행에서는 선진국들의 의결권을 최소 3% 신흥국과 개도국에 각각 이전하기로 했다.

또 IMF와 세계은행 총재 및 고위직을 능력 위주로 임명하기로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는 IMF 지분이 32.4%로 1위인 유럽연합(EU)이 IMF 총재를, 17.1%로 2위인 미국(개별 국가 기준으로는 1위)이 세계은행 총재를 각각 지명해 유럽연합화 미국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선출 방식의 변화로 인해 앞으로 신흥국과 개도국에서도 IMF 총재와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내년 11월 G20 5차 회의 개최국으로 한국이 선정됐다는 사실은 신흥 개도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공조 체제에서 우리나라가 선도적 위치를 확보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내년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확정된 것과 관련해 "유치 효과가 서울올림픽만큼 클 것이며 대단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다.

내년 6월 G20 4차 회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헌츠빌에서 열린다.

⊙ G 정상회의의 역사

그렇다면 G20은 과연 어떻게 구성됐으며, 그 연원은 어디일까.

우선 G20에서 G는 그룹(group)을 뜻한다.

G20의 회원국은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브라질 캐나다 인도 러시아 멕시코 호주 한국 터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27개 회원국인 EU의 경우 6개월마다 한번씩 바뀌는 순환의장국이 G20 대표국이 되며, 이번 회의 땐 스웨덴이 참가했다.

G20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커진 신흥경제국과의 금융 협의를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재무장관 회의 형태로 출범했으며, 첫 회의는 1999년 12월 베를린에서 열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세계 정치 · 경제 이슈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린 G7과 G7에 러시아를 포함시킨 G8이 주도해 왔다.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G20 재무장관 회의는 대통령들이 참석하는 G20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G20의 GDP(국내총생산)는 2008년 48조2760억달러로 전 세계 GDP의 85%를 차지한다.

G20 또는 G7의 역사적 뿌리는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결성됐던 G5 재무장관 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석유 소비가 많아 혹독한 경기 침체를 경험한 '빅5'(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가 조지 슐츠 당시 미국 재무장관의 제안으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의는 1975년 G5 정상회의로 승격됐고, 1976년 푸에르토리코 회의를 거치며 이탈리아와 캐나다의 참여로 G7 정상회의로 확대됐다.

러시아가 정식 회원국이 되면서 G8이 공식 탄생한 것은 22년이 지난 1998년이다.

냉전 붕괴 후 핵무기 관리 불안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서방 선진국 중심이던 G7이 '배타적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G8 체제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2005년 영국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브릭스(BRICs)의 멤버인 중국 브라질 인도와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이 초청된 것을 계기로 G13이 나왔지만 여전히 중심축은 G8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하반기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하면서 G8의 효용성 논란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의 주력으로 등장한 신흥국들이 G8에서 빠져 있어 금융위기 대처에 근본적 문제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G8의 틀과 기능만으로는 복잡다단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글로벌 현안을 대처하는 데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세계 외교무대의 저변에 깔리게 됐다.

이것이 G20 체제 등장의 필요성이 부각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 G20 체제의 성공 관건

이제 G20 체제의 성패는 G20에서 합의된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천되느냐에 달렸다.

일각에선 G20에 너무 많은 국가가 참여한 데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입장이 서로 엇갈려 결국 유엔처럼 말만 많고 실천은 없는 공허한 기구가 될 거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 다극화로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한쪽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된 이상 G20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분석이 더 많다.

G20 체제 재편에 대한 G8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선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한 G8 소속인 일본 측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4일 G20 만찬에서 "많은 국가가 참여하다 보면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하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너무 버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으로선 G20의 등장으로 한국 중국과 영향력을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G8의 반발은 한국의 G20 정상회의 유치전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는 한국을 배제하는 'G14 체제'를 강력 주장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캐나다가 내년 6월 G8과 G20 회의를 함께 열겠다고 하자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에게 "G20은 안 된다"며 반대 압력을 넣었다.

하퍼 총리는 이에 한국 측에 접근해 '6월 캐나다 개최'를 지지해주면 '11월 한국 개최'에 동조하겠다는 뜻을 물밑 협상안을 제안해 왔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내년 6월 캐나다-11월 한국-2011년 프랑스 개최' 중재안을 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츠버그 G20 회의 시작 며칠 전 브라운 총리,사르코지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이 같은 중재안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