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신문,TV를 보다 졸린 듯해서 잠자리에 들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오늘 일어난 일들과 만난 사람들,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잠깐 잠들었다가도 금세 깨어나기 일쑤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나 자동차 소리까지 신경 쓰인다. 몸은 피곤하고 머릿속은 몽롱하다. 자리에 누운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정말 미치겠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하루 8시간 정도의 잠이 필요하다. 일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게 정상이란 얘기다. 토머스 모어가 1516년 쓴 공상과학소설 '유토피아'의 주민들도 하루 8시간씩 잠을 잔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생활방식과 환경이 잠을 빼앗아간다는데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윌리엄 데먼트 교수는 "현대인은 1세기 전보다 평균 1시간 반이나 잠을 덜 잔다"면서 "세계는 피곤에 절어 있다"고 진단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을 줄여온 탓이다. 심지어 적게 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이렇다 보니 잠을 자려 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수면장애가 덩달아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 환자가 2001년 5만1000여명이었으나 지난해엔 22만8000여명으로 4.5배나 급증했다. 잘 때 다리를 떠는 하지불안증후군,일상생활중 갑자기 잠에 빠지는 기면증 등을 합하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전 국민의 30%에 달할 것이란 추정도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인공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소음,알코올과 카페인 남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잠을 잘 못 자면 뇌활동이 둔해져서 집중력 기억력 판단력이 뚝 떨어진다. 당연히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걸리기도 쉽다. 장기적으로는 고혈압 당뇨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가능성도 커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면장애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실제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행동생물학자 폴 마틴은 '달콤한 잠의 유혹'이란 책에서 숙면을 위해선 몇 주 동안 평소보다 30분 일찍 잠드는 연습을 할 것,침실 온도를 시원하게 맞출 것,잠들기 1~2시간 전에 목욕할 것 등을 제시한다. 그래도 안되면 수면클리닉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도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 판이니 참 편치 않은 세상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