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위반" vs "실익 없다" 둘로 갈린 정치권
[Cover Story] 명분 앞세운 선거 책략이 화근?… 지역주의에 포위된 세종시
세종시 건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세운 선거 공약이었다.

당시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고 당선 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공약을 추진했다.

6년여에 걸친 세종시 건설 과정을 살펴보자.

⊙ 세종시 구상의 경과는

행정복합도시 세종시의 구상은 노무현 정부 때에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의 충남 이전 공약을 지키기 위해 2003년부터 신행정 도시 건설 추진 기획단을 출범시키면서 2004년 8월에 연기 공주 지역을 최종 후보지로 확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선고를 내려 신행정수도 공약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당시 정부는 고민 끝에 행정관청의 일부만 이전하기로 하고 행정수도건설안을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안으로 변경했다.

이에 2005년 3월 행복도시법이 만들어졌으며 국민공모를 거쳐 행복도시는 세종시라는 명패를 달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충청권에 인구 50만명을 목표로 하는 국제과학기업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후 이 안은 과학 비즈니스도시 건설로 이어졌다.

하지만 MB정부가 출범한 이후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연기 지역에 행정타운을 짓는 공사는 행복도시법에 따라 착공 단계에 들어가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세종시가 행정도시로 부적절하다는 발언을 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충청권 여론을 의식해 세종시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9월8일 시도지사정책협의회에서 "한나라당과 정부의 기본 입장은 민주당,선진당 등과 협의해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세종시법)을 예정대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시법은 7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해 상임위 전체회의에 넘어가 있는 상태다.

⊙ 세종시의 찬반 입장은

정운찬 후보자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적인 발언이라기보다 세종시 추진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시 건설을 반대하는 측은 세종시가 완공되면 충청 지역이 수도권에 편입돼 오히려 지역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공무원들의 서울 출장이 늘어나면서 행정의 비효율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 발전을 위해 써야 할 국가재정을 정부 청사 이전에 쓴다면 이는 지방의 낙후를 심화시켜 결국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처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수도권 과밀화도 해결하지 못한 채 세종시가 건설되면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면서 "세종시 인구 목표는 50만명이지만 9부2처2청 공무원을 다 합쳐도 6만명에 불과하고 공무원들이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주하지 않아 기러기 가족이 양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시에 22조원을 투자할 것이면 그 돈으로 차라리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 기업을 유치하거나 특목고를 세우거나 대학을 유치해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해야 한다는 측은 국가 균형 발전 논리를 들고 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세종시는 양대 정권이 추진한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이며 절대 깨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건설은 전 · 현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이기 때문에 신의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명박 현 정부도 대선 당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바 있기 때문에 세종시 원안 추진을 번복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신뢰성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앞으로의 전망은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입법부,사법부,청와대 등은 서울에 남게 되지만 9개 부처와 2처2청에 공무원 1만명이 세종시로 내려가게 된다.

산하 기관과 연구 기관 인력도 모두 간다고 해도 1만2000명정도다.

가족이 모두 내려가면 도시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겠지만 고속철도로 한 시간 거리이고 교육 문화 시설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온가족이 이사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 50만명이 넘어야 갖춰지는 도시 역할을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물론 세종시를 완전히 백지화하기는 어렵다.

세종시는 2년 전인 2007년 7월 착공돼 22조5000억원 사업비 중 이미 5조원 이상이 투입된 상태다.

정부와 청와대는 여전히 충청권 민심을 포함한 여론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낭비를 줄이고 충청권 발전에도 도움이 되면서 자족도시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나라당도 내부적으로 행정중심도시 성격을 수정해 교육과학기술부 등 1~2개 부처와 서울대 공대 등만 옮겨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원안대로 추진하기보다는 과학 · 교육기능이 복합된 클러스터로 컨셉트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친환경적 중저밀도 주거단지와 함께 대학 유치,산업단지 조성,기업 유치 등을 통해 녹색성장 메카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외국의 사례는

선진국들은 대부분 수도 중심부에 정부기관이 밀집해 있다.

정부 기관끼리 수시로 드나들며 업무를 조율하고 협의하기에 낭비가 가장 적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 DC는 대통령이 거처하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반경 1㎞ 안에 의회와 13개 행정부처가 자리 잡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역시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17개 행정부처가 런던시내 반경 1㎞ 안에 밀집해 있다.

독일의 경우 동 · 서독 통일 이후 연방의회와 10개 행정부처를 동독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옮기고 서독 수도였던 본에는 상원의원과 6개 행정부처를 남김으로써 정부의 기능을 두 곳에 배치했다.

그러나 최근 독일에서는 극심한 행정 비효율 탓에 행정부 분할을 규정하고 있는 베를린-본 법에 대한 수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준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