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고위 공직자에게 도덕성문제는 공소시효 없어"

반 "과거의 도덕적 흠이 공직 부적격 사유는 안돼"

국회 인사청문에 들어간 고위 공직 후보자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자녀 진학을 비롯 장인의 선거 지원,부인의 사원아파트 분양 등 그 사유도 각양각색이다.

현직 장관 중에서도 청문회 때 위장전입이 드러난 경우가 있다.

위장전입 문제는 새삼스런 것은 아니며 흔히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불편한 진실'로 통한다.

1970년대 이래 부동산과 자녀 교육이 생존의 과제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위해 거짓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국가의 법 · 행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법행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일을 저지르곤 했다.

사법당국의 의식이 미약하고 행정전산체계도 미흡해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병은 만연됐고 주로 지도층 또는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다.

한때 폐결핵을 앓았던 환자의 X레이처럼 지금 흔적이 여지없이 찍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안을 엄격한 잣대로 털어내다 보면 흠집 없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후보자들 가운데서도 어떤 후보는 '직무 수행에 필요한 자질 및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청문회를 통과하는 반면 어떤 후보는 물러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여야의 정파적 이해득실에 따라 위장전입이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장전입의 결격사유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도덕성 문제는 공소시효 없고 타협대상 될 수 없어"

위장전입을 결격사유로 보는 쪽에서는 "위장 전입은 주민등록법에 의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돼 있다"며 도덕성 문제는 공소시효도 없고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 위장전입을 여러 차례 한 사람도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는데 장관의 위장전입은 이미 용서받은 사안이 아니냐고 하지만 선출직과 임명직은 다른 경우라고 반박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경우 준법성과 도덕성보다 능력과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국민적 판단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볼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꼬집는다.

엄격한 도덕성 잣대를 들이대면 등용할 인재가 없다는 볼멘소리를 내기 전에 내편 네편 구별없이 자천 타천 후보들을 모두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의 흠결을 현재의 잣대로 엄격하게 재단하는 게 야박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사회의 도덕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기득권층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반대 측,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공직 부적격 사유는 안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과거의 도덕적 흠이 공직수행에서 부정부패로 이어질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직무와 연관된 문제가 아니라면 도덕적 비난은 받을 수 있지만 공직 부적격을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단기간에 압축적인 발전을 했기 때문에 서구 선진국들과 비슷한 잣대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오래된 과거 일의 경우 당시의 법 감정이나 도덕 기준을 감안하여 포용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야 정쟁과 언론의 경쟁적 관심 등으로 인사청문회의 도덕성 논란은 숱한 부적격자를 만들어내 왔지만 각종 공직선거의 투표 결과는 이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고 꼬집는다.

지나친 도덕성 검증은 우리사회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있지만 그 생산의 진원지인 정치권조차 여당이 되면 비로소 자기 발목의 무거운 족쇄를 발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국민 입장에서도 투명성과 민주주의의 확대를 확인하는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인재를 놓치는 손실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논란 불식시킬 합리적 대안 마련 서둘러야

공직자의 위장전입 전력은 대개 1970~90년대에 이뤄진 것이어서 이해할 만한 대목이 전혀 없지는 않다.

사회경제적 성취가 도덕성보다 우선가치였던 그 시대에 말단,혹은 초급 간부였을 지금의 공직 후보들이 일반과 다른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졌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 수 있다.

더구나 지난 대선에서 국민 다수가 여러 차례 자녀교육 목적의 위장전입 전력을 고백한 후보를 선택한 마당에 새삼 이를 문제삼는 모양새도 사실 우습다.

그러나 현실적 측면을 애써 인정한다 해도 불법행위에 대한 가치판단 자체가 왜곡돼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공직에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여 언제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한점 부끄러움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고위 공직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이를 반드시 지키는 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얻은 교훈도 바로 이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인사청문회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국회가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 등을 검증하는 것으로, 인사청문회법 제정을 통해 2000년 6월 도입됐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경우 정부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20일 이내에 본회의 표결로 처리하게 된다.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의 경우 국회는 청문회만 열 뿐 표결은 하지 않는다. 국무위원(장관)의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가 청문회를 마친 뒤 내정자의 적격 여부에 대한 의견을 담은 경과보고서를 내지만 대통령이 이를 지켜야할 의무는 없다.

위장전입

거주지를 실제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것을 말한다.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다른 학군의 좋은 학교에 자식을 입학시키려는 사람들이 주로 악용한다. 현행 주민등록법에는 위장전입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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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9월19일자 A6면

장관 후보자들이 연일 고개를 숙였다.

위장전입,다운계약서 작성,아들 병역 문제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장관 후보자들이 '사과'를 연발한 것이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배우자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제법 및 공직자윤리법,병역편법은 병역법 위반이다.

특히 위장전입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민일영 대법관 후보자는 부인들이 위장전입을 했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이에 해당된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인준된 민일영 대법관은 부인인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서울 서초동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시댁인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장전입한 데 대해 "부적절한 처신으로 잘못됐다"며 사과했다.

아직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위장전입 의혹이 일자 "가족 일(장인 선거운동)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으로 고개 숙인 장관 후보자들도 많았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18일 열린 청문회에서 "계약서 작성을 직접 하지 않았다"면서도 "집 장만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 적절치 않은 점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는 2003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6억5000만원에 구입하고도 1억3000여만원으로 가격을 낮춰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중개사가 했더라도 법적인 책임은 제게 귀속되는 거니까 그 점에 대한 비난은 피해가지 않겠다"며 사과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대통령,국무총리 후보자,대법관,법무부 장관 지명자,검찰총장과 다수의 장관 지명자들이 위장전입 등으로 범법자가 됐다"며 "문제 되는 공직 후보자들은 사과할 게 아니라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