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국제경영개발원),WEF(세계경제포럼),CATO,TI(국제투명성위원회),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A.T.Kearney 등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발표만 하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다. 이를 본 존 반 리넨 런던정경대 교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스포츠 경기처럼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려는 우리 입장에서 국가경쟁력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해석만은 정확히 해야 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IU가 국가별 정보기술(IT) 경쟁력을 발표했다. 2009년도 한국의 IT 경쟁력은 66개국 중 16위로 평가됐다.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기관 EIU가 이런 조사를 발표한 지는 올해로 세 번째다. 2007년 첫해 우리나라는 3위였고,지난해에는 8위였다. 국내에서는 'IT강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한국의 IT 경쟁력이 추락했다'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 훨씬 전부터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문제는 원인에 대한 해석이다. 저마다 "정통부 폐지로 IT 경쟁력이 저하됐다" "IT정책이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EIU 분석 중 그 어디에도 정부조직 때문에 한국의 IT 경쟁력이 추락했다는 설명은 없다.

진실은 따로 있다. EIU가 처음 IT 경쟁력을 발표했던 2007년 우리나라는 3위를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IT강국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 일본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70점대를 넘어선 1위 미국과 2위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60점대로 평가받은 11개국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나마 3위를 했던 것은 가중치가 높았던 인적자원,연구개발 등 물량지표 덕분이었다. 사업환경(25위),법적환경(35위),IT산업 지원(20위),IT인프라(9위) 등은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 당시 정통부가 멀쩡히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장환경은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2008년 순위 추락도 환경적 요인 탓이 컸고,2009년에도 지식재산권 보호,지원정책 및 제도적 환경 등의 문제점과 IT특허에 대한 평점 하락이 더해진 때문이었다.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이 '정부의 지원정책'이다. 그러나 여기서 비중 있는 평가항목은 '정책의 공정성'이다. 정부가 특정 기술 등에 치우치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시장경쟁을 존중하라는 얘기로 정부조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EIU에 조사 용역을 주는 곳은 국가별 지식재산권 침해발표로 유명한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참여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제프리 하디 BSA 글로벌 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평가를 하는 이유는 개별기업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시장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부 또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시장환경을 갖고 있는가. 정부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따지려면 이런 걸 따져야 한다. 정부조직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