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디자인 설계 분야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부합니다. 이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UMC,독일 X-FAB,미국 IBM 및 동부하이텍 등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배정희 엠실리콘 대표(41)는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LED조명의 핵심 구동칩인 'LED 드라이버 IC'와 생활가전제품의 온 · 습도 조절용 '지능형 센서 ROIC'를 개발,수출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엠실리콘은 주문형반도체(ASIC),즉 반도체 칩을 필요로 하는 회사로부터 회로 설계를 받아 후공정 설계를 한 뒤 하나의 칩으로 제작,공급하고 있다. 공장이 없는 팹리스 디자인하우스다.

배 대표는 1994년 현대전자 공채 2기로 입사한 이후 하이닉스반도체,동부일렉트로닉스,상화마이크로텍 등에서 국내 파운드리(위탁제조) 영업을 했다. 남성들의 영역이던 파운드리 영업을 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깐깐하고 당차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는 2004년 상화마이크로텍에 근무할 때 창업을 결심했다. "남자 동료 2명과 창업을 약속하고 먼저 회사를 그만 두었지요. 하지만 그들이 약속을 어기면서 혼자만 남게 됐습니다.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오기가 생겼죠."



배 대표는 대기업에 근무할 당시의 동료들과 만나 창업을 얘기하던 중 이들과 의기투합,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창업은 했지만 초기에는 신생 업체라서 오더가 거의 없었습니다. 첫 해 매출이 고작 1000만원에 불과했어요. "

이런 상황에서 엠실리콘은 초기 6개월간 후공정 설계비를 받지 않고 디자인을 해주면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신뢰를 쌓아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서 반도체 설계를 해 온 동료들의 기술력과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배 대표의 '뚝심'이 빛을 발하면서 사업기반이 잡혀갔다.

그는 "한때 주부로서 편안히 살 수도 있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며 "하지만 어렵사리 창업한 만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고 회상했다.

엠실리콘은 2005년 10억원,2006년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모바일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유명 업체의 휴대폰,DMB 등 다양한 기기에 들어가는 주문형반도체 수주를 잇달아 따내면서 성장세를 탔다. 현재 월 400만개의 칩을 공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07년 200억원,지난해 23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등 창업 4년 만에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엠실리콘의 기술력이 알려지면서 올해 IBM과 위탁제조 계약을 맺는 등 세계적인 반도체웨이퍼 생산기업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배 대표는 2007년부터 자체적으로 반도체칩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실제로 이 회사는 창업 이후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왔다. 현재 30명의 직원 가운데 엔지니어가 21명에 달한다.

그는 "반도체설계 만으로는 회사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신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제품 개발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성과가 지난해 초 국내 처음으로 개발,양산을 시작한 LED조명용 드라이버 IC와 생활가전제품 등의 온 · 습도 조절용 지능형 센서 ROIC다. 조명용 IC는 국내 유명 LED조명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다.

그는 "LED조명의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향후 친환경 조명 제품이 각광을 받을 게 분명한 만큼 시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능형 센서 ROIC는 90% 이상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에 샘플을 보냈으며 내년 1월부터 월 10만개를 생산,프랑스에 공급할 예정이다.

배 대표는 "디자인하우스 분야도 지난해 말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로 주문생산한 제품을 늦게 찾아가거나 계약을 취소하면서 크게 위축됐다"며 "국내 200여개의 팹리스 업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영업 중단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다소 경기가 살아나면서 주문도 지난 4월 이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출이 증가할 때 기쁘기보다는 다음 해에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날 정도로 부담이 커진다"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다소 줄어들겠지만 이미 수주한 물량이 있어 내년에는 3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강한 기업으로 키워 주문형반도체 설계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전문회사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 회사는 오는 30일 현재의 825㎡ 남짓한 임대 사무실을 떠나 서울 양평동 우림라이온스밸리 1개층(1650㎡)을 매입,이전한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