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여미다’의 필요조건

'백이 강경하게 끊어 일전불사를 외쳐오자 윤 2단은 예상 밖이라는 듯 옷깃을 여미고 숙고에 들어간다.'

프로 바둑기사 간의 대국을 해설하는 장면이다.

문장으로 치면 설명문이다.

그런데 '옷깃을 여미고'가 어색하게 쓰였다.

물론 무심코 그냥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가 걸리는 까닭은 이 말이 특수한 상황에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선 '여미다'는 '벌어진 옷깃이나 장막 따위를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다'란 뜻이다.

'코트 자락을 여미다/병사들은 철모를 고쳐 쓰고… 방탄조끼를 여미고,조용히 전투 준비를 했다'처럼 쓰인다.

이런 쓰임새에서도 드러나듯이 '여미다'는 '단정함'을 의미자질로 갖는 말이다.

그 속성만 충족하면 비교적 두루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옷깃'이 붙으면 달라진다.

'옷깃을 여미다'라고 하면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가지런하게 하여 자세를 바로잡다'란 뜻이 돼 매우 제한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말이 관용구이기 때문이다.

관용구란 오랫동안 쓰다 보니 입에 굳어져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를 말한다.

'밟이 넓다'가 말 그대로 발이 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경우를 나타내는 것 따위다.

마찬가지로 '옷깃을 여미다'는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었다'처럼 쓸 때 자연스럽다.

예문에서의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를 '바짝 긴장하고/정신을 가다듬고/자세를 바로잡고' 정도로 표현해야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