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는 걸까. 아니면 사람 마음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게 동서고금 모두 같은 걸까. 100여년 전 '악마의 사전'이란 패러디 사전을 펴낸 미국의 기자 출신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1842~1914)는 행복을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안도감'으로 정의했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란 얘기다. 비어스는 같은 사전에서 충고란 '친구를 잃는 방법 중 가장 미련한 자가 선택하는 법,국회는 '법률을 무효화하기 위해 회합하는 사람들의 집합',개혁은 '어떤 운동의 선전에 이용되는 슬라이드로 목적 달성 즉시 밀려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토론은 '상대의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드는 방법',영향력은 '정치에서 상당량의 금화와 바꿀 수 있는 가공의 것',돈은 '내 손에서 멀어졌을 때 외엔 쓸모 없지만 교양의 증거이자 상류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무모함은 '용기있는 짓을 한 것까진 좋았는데 재수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비어스는 남북전쟁의 비참함과 전후(戰後)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사회를 지켜본 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움직이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이처럼 냉소와 풍자,독설 가득한 용어 풀이에 담아냈다. 1906년 '냉소파 사전'이란 이름으로 내놨다 5년 뒤 '악마의 사전'으로 바꿨다.

차마 입밖으로 소리내서 말하기 힘든 내용들에 대해 비어스는 통쾌한 비아냥을 담은 만큼 정신건강에 좋다고 주장했다.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의 상처가 워낙 깊은 걸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정부와 월가 경제학자들에 대한 일반의 불신이 반영된 '악마의 사전-금융판'을 소개했다.

최고신용등급(AAA)은 '주택으로 위장된 판잣집을 담보로 발행된 증권을 속여 파는데 사용되는 미사여구',신용한도는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대출자금',U자형 경기회복은 '경기침체의 끝과 속성을 예측할 수 없는 이코노미스트들을 위한 기회'라는 식이다.

정부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은 걸로 치면 우리가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오죽하면 어떤 정책이든 정부가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 조만간 실시한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는 말까지 있으랴.말은 시대와 사회의 거울이다. 불신과 냉소가 가득한 말이 판치는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판 악마의 사전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상식을 지키는 지도층 인사들이 많아졌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