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발버둥쳤지만 종우 역은 운명"
영화 '내사랑 내곁에' 개봉 앞둔 소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막 끝내고 루게릭 환자 역을 제안받았을 때 배우 김명민은 "절대 못한다, 죽으라는 얘기냐"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몸무게 20㎏을 빼고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몸으로 루게릭 환자 종우가 되어 돌아왔다.

'목숨 걸고 했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뺀 몸무게의 절반 정도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정상은 아닌 몸이었다.

못 한다고 했다가 왜 루게릭 환자 역을 결국 맡았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만났다면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한참을 고민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운명이었다는 말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얻으려고 손을 뻗는다고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나를 옭아매는 게 있어요. 어떤 일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매일 같이 그 일을 하면 죽는 악몽을 꿔요. 악몽은 반복되고 강도도 점점 세지고요.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으시겠어요? 그런데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저를 몰고 가더라고요."

그는 "이렇게까지 살을 뺀 것에만 관심이 쏠릴 줄은 몰랐다"면서도 "서운한 줄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한만큼 결과가 나올까, 하는 기대는 애초부터 안 했어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자는 생각뿐이었죠. 나 자신조차 이기지 못했다면 결과가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에 저 자신한테 점수를 준거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나빠지고 지수(하지원)를 떠나보낸 종우는 환상에 빠진다.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춤을 추고, 지수에게 다 나았으니 데리러 오라고 전화하는 장면이다.

환상 속에서 종우는 날아갈 듯 가벼운 몸짓과 밝은 표정을 보여주지만, 당시 실제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어지러운데 춤추며 턴을 하잖아요. 한 번 돌 때마다 탈진했죠. 그래서 기억도 잘 안 나요. 한겨울이었는데 실내이긴 했지만, 난방이 안 돼 스태프들은 모두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는데 전 얇은 환자복 하나 입고 춤을 추다 쉴 새 없이 탈진을 하니 밖에는 응급차가 대기하고 있었죠. 편집되긴 했지만,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먹는 장면도 있었어요. 콜라 버튼을 누른다고 눌렀는데 손가락은 다른 곳에 가 있고, 몸이 계속 휘청거려서 감독님이 좀 가만히 있어보라고 했다더라고요. 몸을 안 움직이는 게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극 초반, 지수를 만나고 고시 공부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을 때의 종우는 거리낌 없이 지수에게 청혼을 하고, '닭살 돋는'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는 순수하고 맑고 밝은 청년이었다.

루게릭병 환자라는 사실만 뺀다면 지금까지 김명민이 해 온 역할 중에서 가장 밝은 캐릭터다.

"낯 간지럽기 짝이 없죠. 김명민이면 절대 못 했을 테지만, 백종우니까 할 수 있는 거죠."

배우가 자신을 잊고 캐릭터 속으로 완전히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만이 단 하나의 바른길이라고 믿고 혹독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한 이 배우는 "나 편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김명민의 감정은 없애려고 하죠. 나한테 부족한 건 백종우의 감정이잖아요.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습관처럼 김명민이 나오니까, 더더욱 매일같이 백종우가 되려고 혹독하게 노력해요. 제가 생각해도 정신병자 같아요. 편하게 즐기면서 연기한다는 배우들이 부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안 되는 걸 어쩌겠어요."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