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이란 TV프로그램이 있다. 부메랑 던지기 같은 취미의 달인도 소개되지만 대부분 소규모 일터의 수작업을 동료들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근로자들이 주인공이다. 작은 일이지만 자신만의 프로세스나 도구를 고안한 뒤 꾸준한 연습을 통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얼마 전엔 조폐공사 직원 가운데 5만원짜리 지폐다발을 두 손으로 넘겨가며 불량지폐를 골라내는 달인을 보게 됐다. 두꺼운 지폐 더미를 한장 한장 빠짐없이 넘기는 손동작도 놀랄 만큼 신속하지만 보통사람 눈엔 잘 뜨이지도 않는 작디 작은 흠까지 순식간에 정확하게 찾아내는 숙련도에 그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련도 하면 경기도 기흥의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있었다는 일도 떠오른다. 신한은행 연수원은 음식이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수에 참가한 임직원들에게 되도록 좋은 식사를 제공하려는 은행의 배려가 첫째 요인이지만 식당 아주머니의 손맛 덕도 컸는데,어느날 갑자기 그 아주머니가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얘기였다.

사연인즉 월급 수령장부에 도장을 찍는 대신 사인을 하라고 한 게 원인이더라고 했다. 한글을 모른다는 건데 그동안 영양사가 팩스로 보내준 식단을 보고 차질 없이 음식을 장만했던 만큼 그런 사정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본점에서 배송된 식자재만 보고도 메뉴가 뭔지 알았다니 도사가 따로 없는 셈이다.

1960년대 후반 외국은행이 들어온 이래 정부와의 대화는 주한 외국은행단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외환위기 전까지 외국은행단은 미국계,유럽계,일본계,기타로 나누어졌다. 같은 서양이라도 미국계와 유럽계는 지점장의 나이부터 달랐다. 미국계엔 30대 초중반 지점장이 드물지 않은 데 비해 유럽계엔 50대 중반 이후가 주류였다.

알고 보니 두 지역의 은행업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원인이었다. 유럽계의 경우 오랜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는 반면 미국계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시했다. 지난해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수없이 많은 신상품이 금융공학의 뒷받침 아래 개발됐고 그 같은 흐름 앞엔 미국식 금융모델이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성과보수 시스템으로 큰 수익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작지만 기본적인 업무는 경시됐다. 세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서브프라임 사태만 해도 자산유동화 시장이 폭발하듯 커지는 동안 까다로운 절차가 생략되면서 최초 대출 취급은행 업무에서 기본 절차나 원칙이 무너진 게 사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산업재해 또한 대부분이 단순하게 반복되지만 꼭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다. 우리의 경우 비교적 빨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화려하고 빛나는 업무도 중요하지만 작고 하찮아 보이는 업무를 소홀히 할 때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싶다.

김선구 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sunkoo200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