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세상이 분주하다. 고향 길에 가져갈 선물 보따리 판매 행사들이 한창이고,사람들 마음도 많이 들떠있는 듯하다. 일년 중 가장 풍요롭다고 하는 추석시즌이 돌아오면 소비가 살아나는데,필자는 그 이유를 '쌈짓돈'에서 찾아봤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가 속바지 주머니에서 꺼내주시던 꼬깃꼬깃한 '쌈짓돈'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았다.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던 풍습이 쌈짓돈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기업에서 그럴 듯한 복리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적인 '정'을 상징하는 쌈짓돈에 필자는 아주 특별한 일화가 있다. 회사가 운영하는 오래된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쌈짓돈을 챙겨 아주머니들의 앞치마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곤 했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그런 날들이 더 많았다.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릴 적 할머니가 손에 쥐어 줬던 쌈짓돈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몇 년간 바쁜 일정 때문에 자주 못 가다가 최근 우연히 매장을 방문했는데,아주머니들이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순간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그 중에는 창업 초기부터 함께 일해 온 분들도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아주머니들을 보자 감사의 마음에 앞서 눈시울이 먼저 적셔졌다.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앞만 보고 달렸던 의욕과 성장,그리고 30대 젊은 날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젖은 눈시울을 몰래 훔치고 아주머니들과 옛날 옛적의 이야기들을 잠깐 나누었다. 아들이 다 커서 지금 무슨일을 하는지,딸은 시집가서 아이 낳고 잘 사는지 등에 대한 근황을 주고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얘기에 빠져들다보니 그만 쌈짓돈 챙겨드리는 것을 깜빡 잊고 온게 아닌가! 집에 와서도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이 사무쳤다. 20여 년의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니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 후에는 그곳에 갈 때마다 주머니에 쌈짓돈을 미리 챙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쌈짓돈은 지갑이 아니라 주머니 안에 꼬깃꼬깃 있어야 쌈짓돈답다. 또 의미 있게 쓰여지기 때문에 작지만 더욱 소중하다. 작은 점포에서 작은 회사로,이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오면서 꼬깃꼬깃 정이 묻어나는 쌈짓돈을 전하는 사랑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제는 말할 수 있노라.자연이 주는 선물인 추석명절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한 나눔이 있기에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함이 더욱 크다고.그래서 가장 풍요롭다고.

김순진 놀부NBG 회장 kimsj@nolb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