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에 '야한 동영상'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골목을 찾았다. 남의 눈을 살펴가며 사가지고 오면 엉뚱한 내용이 들어 있어 다시 가면 천연덕스럽게 "뭔가 잘못됐나보다,이건 진짜다" 라며 다른 걸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가져온 것 역시 비슷해 가슴을 친 적이 적지 않다고들 했다.

그렇게 낚였던 이들에게 인터넷은 축복 같았을 것이다. 곳곳에 널린 데다 공짜가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운상가 얘기에 실소를 금치 못하던 사람 중 더러는 가슴을 졸이게 생겼다. 미국 · 일본의 성인 영상물 제작업체가 7월에 이어 다시 국내 네티즌 6만5000명을 저작권 위반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선 탓이다.

1차의 경우 검찰이 수사대상을 3회 이상 올린 이들로 정해 대부분 무혐의 처리하자 한국 영화의 인터넷 불법 유통엔 강경대응하면서 외국 콘텐츠는 차별 대우한다며 발끈, 이번엔 한국 수사 기준에 맞춰 저작권 침해자를 선별했으니 계속 차별받는다 싶으면 미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고 한다.

성인영상물이 저작권 보호대상이냐 아니냐라는 논란도 있지만 작심하고 문제를 삼는 만큼 쉽사리 넘어갈 것 같진 않다. 상업적으로 배포한 경우야 그렇다치고 재미 삼아 주위 사람들에게 보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싶을 것이다. 일부러 찾아 들어간 것도 아니고 스팸메일을 재전송한 경우엔 더 억울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화근은 호기심과 공짜 좋아하는 마음이다. 야동은 아니지만 공짜 동영상을 보려다 꼼짝없이 낚이는 수도 적지 않다. TV에서 놓친 드라마를 인터넷에서 무료로 보려다 개인 정보만 몽땅 내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회원으로 가입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다 보면 스팸과 바이러스만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해당 방송국 사이트에 일정액을 내고 보면 될 걸 공짜를 찾다 털리는 것이다. 공짜인 줄 알았다가 낚이고 털리고 심지어 발리는 일은 비단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가입하고 활동하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주소를 해킹당해도 하소연할 길 없는 건 물론 상업성 광고를 올리는 범죄자로 몰리는 게 그것이다.

인터넷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의 실시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언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고 세계 각국 도서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건 물론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 한국의 할아버지가 미국에 사는 자녀와 손주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모든 활동의 대부분이 비용 없이 공짜로 이뤄진다.

인터넷은 그러나 지킬과 하이드다. 보통은 지킬이지만 언제 하이드로 변할지 알 길 없다. 미니 홈페이지에 올려놨던 사진이나 문구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싸움에 휘말리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 그룹 2PM의 박재범 사건은 인터넷에 달린 양날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불행히도 인터넷에 개인공간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밀번호도 믿기 어렵다. 살다보면 사랑만 변하는 게 아니라 생각과 가치관도 달라진다. 공책에 써놓은 것과 달리 미니홈피에 써놓은 일기는 삭제해도 누군가에 의해 복제돼 멋대로 떠다닐 수 있다. 세상 모든 문명의 이기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역시 방향만 바꾸면 무기다.

인터넷은 소통의 자유는 물론 드러내기와 훔쳐보기의 자유도 극대화했다. 워낙 많은 내용이 흘러다니다 보니 인터넷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 또한 일반화됐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를 표방한 모든 것들이 실은 개인신상정보를 내준 대가이거나 미끼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그같은 인식이 턱없이 부족했을 뿐이다. 성인영상물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원칙의 중요성에 눈뜨는 수가 많다. 인터넷에 대한 사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