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열리는 학회 등에 다녀 오면 그간의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 결재 사항을 검토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부재중 남겨진 연락 메모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책상 위에는 국내외에서 필자를 찾은 메모들이 두텁게 쌓여있곤 하는데,그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인연의 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초에도 해외 출장을 다녀와 비서실에서 정리해 놓은 메모들을 훑고 있는데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마르쿠스 조세프 로스,from 홍콩.'이름만으로는 얼른 생각이 나지 않다가 아래에 적힌 메모를 보고서야 반가운 기억이 떠올랐다. 5년 전 중국의 한 공항에서 스쳤던 독일인이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독일의 한 국제학회에서 강연을 한 뒤 귀국하던 길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몇 시간의 연착이 있었고,모두들 분주한 가운데 홀로 무료해하던 대합실에서 마침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로 마르쿠스씨였다. 그는 홍콩에 거주하며 국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업무적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고,금세 친한 친구처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중 필자가 척추 디스크 전문의라는 걸 알게 된 그는 자신이 얼마 전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꺼냈다. 이에 환자 중심의 최신 의술 경향과 한국 의료의 수준 등에 대해 알려준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저런 대화끝에 작별했는데 그때의 짧은 만남이 인연이 돼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마르쿠스씨는 다시 허리가 아파 보다 안전하면서도 예후가 검증된 의료 기관을 찾다가 한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결정한 병원이 바로 필자가 있는 곳이었다고 했다. 반가움에 통화를 먼저 하고 국제환자센터를 통해 수속을 밟도록 했다. 병원 수속 등 국내 체류와 관련한 모든 일정을 확정한 그는 올 3월 부인과 입국해 허리 수술을 받은 뒤 간단한 관광까지 즐겼다. 3일간의 입원 기간을 포함해 일주일간 체류했는데,자신의 딸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 '빅뱅'의 팬이라며 CD까지 챙겨 돌아갔다. 척추 수술 후에는 재활이 중요해 홍콩에 있는 자이로토닉이라는 운동센터를 소개해 주었는데,최근까지도 경과가 좋아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업무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많은 만남을 가질 것이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해도 상대는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그 반대의 경우도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인연은 세상이 변하면서 개인의 활동 범주가 동네에서 지역으로 국내로,세계로 넓어짐에 따라 이제는 국경을 넘는 일까지 흔해지고 있다.

작은 인연들이 빚어내는 인상 역시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범위를 넓혀가는 세상이 됐다. 거리에서 스치는 옷깃의 인연에도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호 우리들병원그룹 이사장 shlee@woorid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