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노조의 공장점거 해제로 겨우 청산을 면했던 쌍용자동차가 또 다시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핵심 연구원들의 이탈이 문제입니다.

'쌍용차를 사랑하는 모임' 등 인터넷 카페에는 "일을 가장 많이 해야 할 젊은 연구원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이번 주에도 2층과 4층에서 퇴사한 연구원들이 많았다. 다음 주엔 더 많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연구원들이 자동차 회사도 아닌 전자회사로 옮길 정도로 무조건 나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설계부문,또 과장 이하급 연구원들이 많이 떠난다고 하네요.

관리직 등 일반 직원 입장에선 동료 이탈이 힘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미노가 될까 두려워합니다. 회사 측에선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퇴직하는 연구원을 막을 방안을 내보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쌍용차 연구원들이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비전 부재'인 것 같습니다. 회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적어졌다고 할까요?

'연봉 및 처우'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입니다.

쌍용차 연구원들은 그동안 '강성 노조'의 핵심인 생산직보다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석·박사 학위까지 따고 입사했는데,실질 임금이 고졸 생산직(잔업·특근수당 포함)보다 적은 사례도 많았다는 거지요.

여기에다 회사가 위기를 맞으며 '상여금 250% 반납 및 복지중단,3년간 승급중단'이 불가피해진데다,월급마저 4개월째 밀린 상태입니다. '이직 제안'을 받은 연구원들이 더이상 버티기 어렵게 된 것이지요.

쌍용차 연구원들은 현재 연봉에다 최대 1000만원 안팎을 더 받고,직급도 올라가는 조건으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로 빠져나가는 연구원 중 '경쟁력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스카우트 방식이 많으니,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쌍용차 연구원들은 노조가 77일간 불법 점거농성에 나섰을 때 평택 인근 PC방을 돌면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기도 했습니다. 일부나마 공장 진입이 가능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일터로 향했던 사람들도 연구원들이었습니다.

연구조직이 와해된 곳은 미래가 없습니다. 뛰어난 연구원들이 없으면 시장성 있는 신차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친환경차와 전장화'란 글로벌 트렌드가 뚜렷할 땐 더욱 그렇지요.

쌍용차는 오는 15일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냅니다. 11월 초 쯤이면 진짜 살아날 수 있을 지에 대한 결론이 나옵니다.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입니다. 연구원 이탈이 가속화하면 장기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의 힘은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나옵니다. 글로벌 경쟁사,심지어 자사의 해외공장보다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내 생산직 노조를 갖고 있으면서도,호실적을 내온 배경이 밤샘 근무를 밥먹듯이 하는 연구원들이란 것이죠.

쌍용차는 세단과 SUV 등 전 차종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고 판매할 능력을 갖춘 종합 자동차 회사입니다. 이런 점에선 현대·기아차와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다만 연구원들이 떠나버리면 이를 증명할 도리가 없을 것 같아,안타깝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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