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사랑,썩 어울리는 짝은 아니다. 무릇 남자란 여자들과 '달리' 명분이나 야망을 위해 사랑의 자리를 비워놓을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를 키워온 8할의 진실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베지 않았던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글쎄,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으리라 여겨지지만,어쨌거나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전쟁터로 향하는 남자들의 뒷모습은 종종 '남자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은연중 남자들의 역할모델을 제한하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억압기제로 작용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랑에 목매는 남자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방면의 대표주자는 18세기가 되어서야 출현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한 여인을 사랑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해보라.결국에는 자살로 마감되는 이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유럽 낭만주의가 고안해낸 상상물이기는 하지만,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사랑을 존재의 모험으로 이해하고 있는 어떤 남자들의 시발점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남자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없지 않다. 배우 고 장진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남편 김영균씨 이야기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위암 판정을 받고 1년여 간 투병해온 그녀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고 임종하기 나흘 전 혼인신고를 마치고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한 사실이 밝혀져 더욱 화제가 된 김씨는 최근 그녀의 부모님께 유산 집행 과정의 모든 권리를 위임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인터넷상으로 떠도는 모 지면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다는 말,"내 정성이 부족해서였겠지.내 기도가 모자라서였겠지…"는 그녀의 유언 "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맙고,오래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에 대한 가장 절절한 화답이 됐으며 이해되지 못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현실화시킨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이에 반해 배우 강혜정에 대한 가수 타블로의 사랑은 삶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일상의 사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만하다. 곧 2세가 생긴다는 연인의 고백에 올 10월 결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타블로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연인들이 이러한 수순을 거쳐 결혼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블로의 선택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전해준 연인에게 자신의 홈피를 통해 진정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며 그녀가 좀더 안정된 심리상태로 임신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곧바로 결혼사실을 공식화하는 그의 일련의 행동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 남자들이 사랑과 결혼과 관련된 행위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내면화하며 자기 인생의 새로운 국면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자못 소중하고 귀여운 경우라고 할 만하다.

우리 시대 진정한 남자란 무엇일까. 어느 누가 정답을 알 수 있을까마는 한 가지 정도는 알 듯도 하다. 오늘날 이 땅의 남자들은 사랑이라는 친밀성의 영역을 도외시한다면 자기 정체성의 어느 한 부분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제 남자들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녀들보다 '훨씬 더' 사랑이라는 감정의 세목들을 조련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의미나 궁극의 행복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어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첫 출발은 천관녀를 긍정하는 것,그녀의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이 영웅으로 가는 길임을 알아차리는 과정이 될 것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