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원로 · 지식인 1200여명이 어제 세종시 건설 중단을 촉구(促求)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직 국무총리와 장관,시민단체 대표,학계 인사 다수가 참여한 '수도분할저지 국민캠페인'은 "세종시 건설은 막대한 행정 비효율을 야기하는 망국적 조치로 즉시 수정해야 하며 국민투표에 부쳐서라도 하루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수정' 발언에 이어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화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거나 지금처럼 논란만 키우는 상태로 방치되어서는 안될 일로,차제에 분명한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세종시 문제를 재검토해 개발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대로는 너무나 큰 국가적 손실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5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마당에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앞으로 더 큰 비용부담과 부작용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에서 그렇다.

첫째,세종시는 그 출발부터가 정치논리의 산물이다. 지난 참여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의 명분을 내세웠지만,행정효율이나 국토 안보 · 장기적 국가발전은 도외시되고 충청권의 표를 의식한 선거전략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당초의 수도이전 계획이 위헌판결을 받자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편법으로 세종시 건설을 밀어붙이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둘째,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입법 · 사법부,청와대 등은 서울에 남고 행정부처는 내려가는 구도로,이는 사실상의 '수도분할'이자 국가운영의 핵심조직이 분산되는 것을 뜻한다. 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국민과 기업의 불편만 키울 수밖에 없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셋째,세종시에 정부부처를 이전해 1만2000명의 공무원이 정주한다고 해도 자족기능을 갖추기 어렵다. 정부부처 공무원조차 상당수가 가족은 서울에 남겨 놓겠다는 마당이고 보면,목표하고 있는 인구 50만명의 신도시 조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결국 건물만 즐비하고 주민은 없는 유령도시로 전락(轉落)하고 말 소지가 크다.

넷째,대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시대에 대도시 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의 지표가 되고 있다.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수도권 규제정책을 폐기(廢棄)하고,수도권 집중과 육성을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 전략으로 삼은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분할로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 주변 거대도시와의 경쟁에서 서울이 밀릴 수밖에 없다.

다섯째,'수도분할 저지 국민 캠페인'의 주장처럼,세종시는 오히려 수도권을 충청권으로 확대시켜 다른 지역 자본과 인구를 빨아들임으로써 지역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역균형발전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세종시는 어떤 명분으로도 당위성을 갖기 어렵고,엄청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 늦기 전에 세종시 건설의 원안 폐기와 개발방향의 수정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이유다. 그것이 앞으로의 더 큰 혼란과 국가자원의 낭비,경제 · 사회적 비용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여러가지 개발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국가적 낭비를 줄이고 충청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면서 자족도시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대책이다. 친환경 기업과 학교를 유치해 의료 교육 문화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녹색 신성장 복합도시로 건설하거나,인근의 대덕연구단지와 연계된 개발을 통해 과학기술 연구벨트로 육성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해볼 만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세종시가 이대로 가서는 결코 안된다. 하루빨리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정부가 먼저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 충청권의 반발에 발목 잡혀 눈치만 보면서 미적거릴 게 아니라 행정부처 이전의 부당성과 계획 수정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득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권도 지역이기주의와 당장의 정치적 이해타산에만 빠져 국민 분열을 부추기고 정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 보다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