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행사로 9월 중순으로 예정된 설악산 무박2일 산행을 앞두고 은근히 걱정된다. 실내에서 조금씩 운동한 것만 믿고 2년 전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가 중간 지점에서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어 이번에도 회사 책임자로서 뒤처지거나 중도에 포기하면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에 가기 전 두세 차례 준비산행에 나서기로 하고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북한산에 갔다. 상명대 뒤편을 시작으로 향적봉,문수봉을 넘어 대동문을 거쳐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정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입추,처서가 지나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자주 불어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땀을 식히는 연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줄을 지어 산행하는 산악회원들로 등산로는 가득했다. 산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에서는 힘든 일상의 근심걱정 대신 자신감과 웃음이 가득했다. 집에서 불과 10여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아름다운 산을 곁에 두고도 지난 10여년 동안 왜 잊고 살았는지 아쉬움이 컸다.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일찍 나가 늦게 퇴근 후 잠만 자는 하숙생처럼 지내다가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한 산행은 값진 경험이었다. 아이들의 장래 계획과 우리 부부의 노후 설계,살다보면 부딪치게 마련인 소소한 집안과 가족의 일들에 대해 모처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보니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그동안 너무 집안일에 대해 소홀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작은 일에서도 소중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한 달에 한두 번은 이런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하며 5시간여의 산행을 마쳤다.

산행을 통해 얻은 1차적인 기쁨이 꽃과 나무,맑은 계곡물 등 빼어난 자연환경과의 만남과 부부간의 정을 돈독하게 만들었던 대화였다면,산행 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 중 물과 과일만 먹어 시장기가 도는 터에 마침 눈앞에 산 두부집이 보였다. 두부 한 모에 막걸리 1병을 시켜 아내와 나눠먹으니 요기도 되고 산행 후의 상쾌함과 비교적 긴 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이 함께 어울려 기분이 좋았다. 평소 세종대왕의 애민(愛民)사상을 존경했는데,세종대왕 초상이 그려진 1만원 한 장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느낀 순간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길 버스에 올랐는데 운전석 옆 광고판에 파산신청을 부추기는 듯한 광고물이 보였다. 로펌의 판촉활동이라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수수료 수입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에게 파산을 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었다. 신용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1만원으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하루빨리 신용과 인생이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ccrschairman@ccr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