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란 큰 세력과 싸워 이겼습니다. 오늘은 평택공장 불법 점거 사태처럼 정치적 색깔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노동주권의 기반을 되찾은 날입니다. "

쌍용자동차 노조가 민주노총 탈퇴 투표에 나선 8일 평택공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이날의 투표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73.1%의 압도적 지지율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를 가결,정치적으로 휘둘려온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을 '표'로 표출했다. 이날 투표 결과는 집행부 주도 없이 개별 조합원들이 직접 나서서 성사시킨 첫 사례라는 의미도 갖는다.

◆"희망의 축포를 쐈다" 조합원들 환호

포털사이트 네이버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모임' 카페에는 이날 개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부터 쌍용차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환영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아이디 '날아라렉스'는 "오늘은 외부세력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라며 "노조 창립일을 이날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디 '리차드'는 "무효표를 제외하면 거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했다"며 "거대한 산을 넘었다고 장벽이 없는 것이 아닌 만큼 잃어버린 고객을 되찾기 위해 똘똘 뭉치자"고 썼다.

'물가의 잔디'는 "73.1%의 가결이 헛되지 않도록 새로운 노조 탄생을 기원한다"며 "민주노총 탈퇴를 원했던 처음처럼 이제 쌍용차 가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쌍칼'은 "우리 회사 희망의 축포가 쏘아졌다"며 "일류 자동차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쌍용차 직원 및 가족 6900여명이 가입한 커뮤니티다.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 높았다

쌍용차 노조원들이 민주노총에 갖고 있는 감정은 '배신감'으로 요약된다. 사측이 2646명의 감원을 담은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노조원 중 상당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강경투쟁 방침을 적극 옹호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에 걸쳐 진행된 옥쇄파업으로 얻은 것은 황폐화된 생산시설과 눈돌린 소비자,파산 위기에 몰린 회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속았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투표장에서 만난 조합원 박모씨는 "2006년 옥쇄파업 당시에도 강경한 기류가 있었지만 회사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보름여 만에 회사 측 의견을 수용하고 파업을 풀었다"며 "하지만 이번 파업은 투쟁 방침 결정과 지휘에 금속노조 지도부가 깊숙이 간여하다보니 회사의 존폐 위기조차 무시한 채 이념투쟁으로 흘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 측은 이번 탈퇴 총회에 대해 '회사측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들이 얼마나 조합원들의 이해와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투표를 주도한 도장2팀의 조은상 기감은 "민주노총 30만 조합원과 금속노조 15만 조합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정치 파업에 (민주노총)이 올인하다보니 (조합원들이)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옥쇄파업 60일이 넘어서면서 탈퇴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옥쇄파업 당시 가담하지 않고 외부에서 지켜본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느끼는 반발은 더욱 심하다. "떠나는 딜러들과 냉담해지는 소비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도장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위기감을 못 느끼나'하는 답답함이 들었다"며 "나중에 금속노조 지도부가 계속 강경투쟁을 독려했다는 말을 듣고 울분이 터져 나왔다"고 토로했다.

◆다른 완성차 업계에도 영향 미칠듯

쌍용차 조합원들은 이번 총회에서 금속노조 탈퇴 건 이외에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안건도 통과시켰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 내달 새 집행부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새 위원장 후보 중에서는 친민주노총 후보가 출마할 전망이다. 추가 구조조정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시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이 과정에서 친민주노총 후보가 당선되고 민주노총이 다시 간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쌍용차 노조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을 고려하면 당선 전망은 밝지 않다. 민주노총 탈퇴를 주도했던 한 조합원은 "아직 선거를 지켜봐야 하지만 새로운 집행부는 당분간 독립조직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평택=조재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