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8 · 15 경축사에서 정치개혁을 주창했다. 현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탈정치적 행보를 보며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탈정치의 끝이 정치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안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왜 하필 '선거구제 개혁'일까.

대통령의 경축사 말고는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게 없다. 그러나 사안이 사인인 만큼 정치권은 설왕설래를 그치지 않는다. 여야 간에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결론은 한나라당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이야기인데 여당이 야당을 이롭게 해줄 리가 없으니 그 저의를 의심한다.

유 · 불리를 떠나서 일을 더 그르치기 전에 여야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선거구제를 고치면'지역주의 정치'는 사라질 것인가? 지역주의 정치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선거구제를 고치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중대선거구제가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억지를 부릴 때만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중대선거구제는 독재시절에 야당 성향이 강한 도시지역에서 여당 후보자를 억지로 동반 당선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이를 왜 억지라고 하느냐 하면 같은 지역구에서 한 사람은 90%의 득표를 받아 당선되고 다른 한 사람은 10%를 받아 당선된다고 하면 이게 억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억지를 부리지 않으려고 같은 당에서 복수 후보자를 내세우거나 한 유권자가 복수의 투표를 하게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과는'도루묵'이 된다. 하나의 당이 그 지역을 독식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성향은 독재시대의 야당 성향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공천에 의지한 중앙당 정치라는 근본적 모순 때문에 생긴'감정'인 것이다. 모순을 그대로 두고 감정을 일시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억지 논리이다. 이를 도입하면 영남에서 호남 비례대표가 나오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는 것인데,이런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라고 해야 할지 지역구 국회의원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나은 방책은 없을까. 돌아가는 길이 있다. 단'감정'을'제도'로 한꺼번에 뜯어 고칠 생각은 말아야 한다. 대안은 지역구의원이 국회의원 되는 경로를 바꿔주는 것이다. 지금 지역구 국회의원은 중앙당의 시녀일 뿐이다. 싸우라면 싸울 수밖에 없다. 공천을 중앙당이 해주기 때문이다. 그 중앙당이 바로'지역감정 확대재생산 공장'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공천권을 중앙당으로부터 확실하게 지역구 주민에게로 옮겨와야 한다. 후보자 경선제도가 그것인데 우리가 지금 이를 하는 둥 마는 둥 시행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 경선제도가 어떻게 해서 우회적으로 지역감정을 치유하게 된다는 것일까. 중앙당이 공천하면 호남을,또는 영남을 대변하게 되지만 지역구 주민이 공천하면 같은 당의 국회의원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지역'이 아니라'지역구'를 대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라도 여수와 경상도 남해가 협조하면 협조했지 싸울 일이 더 많겠는가. 국회의원이 중앙당의 명령을 받지 않고 진정으로 자기 지역구를 대표하게 만들어서 선거과정에 영남,호남,충청의 지역감정이 동원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즉 공천을 완전히 지역구 주민에게 맡기는 공천 민주화개혁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개혁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도 필요할 때 야당 국회의원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으니 국회와 대통령 사이에 권력분립이 저절로 이뤄진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정치개혁 효과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조중빈 <국민대 교수ㆍ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