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 주연 최강희 "가장 가까운 모녀사이 愛憎 연기 진땀 났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엄마가 생각났다''내 얘기 같다'고들 해요. 한 남성 관객은 '집에 들어갈 때 엄마에게 꽃이라도 사다드려야겠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가 꿈을 주지는 않지만 엄마와 싸운 것을 미안해하는 기회는 주나봐요. "

냉랭하기로 이름난 기자 시사회장을 '눈물 바다'로 만든 영화 '애자'(9일 개봉 · 감독 정기훈)의 최강희(33).암 투병 중인 어머니 역 김영애의 '막장 백수' 딸로 출연해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했다. 그녀의 전작 '여고괴담'의 귀신,'달콤살벌한 연인'의 살인녀,'내 사랑'의 종잡을 수 없는 여인 등은 공감하기에는 너무 튀는 배역이었다. "이번에 뜨거운 관객 반응을 보곤 연기에 새삼 재미를 느꼈다"는 그녀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모녀에 관한 얘기는 흔해요. 그러나 대본을 읽어보니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청승맞지 않았어요. 엄마 마음을 헤아리거나,참고 희생하는 딸이 아니었어요. 엄마도 무척 드셌고요. 어려운 연기를 요하는 배역이라 처음에는 두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지도 않았고요. 100번 연습을 하더라도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덜컥 출연을 결정했어요. "

영화 초반 15분간은 뾰족하고 극악스러운 두 모녀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딸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허울을 쓴 백수에다 주먹질이 예사고, 엄마는 그런 딸을 사정없이 두들겨팬다. 엄마가 갑자기 암으로 쓰러졌어도 이들은 금방 솔직해지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서투른 모녀의 모습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모녀지간이란 원래 딸이 말문을 떼면 티격태격 싸우는 관계예요. 그렇지만 싸워도 곧 잊어버리고 용서되는,뒤끝없고 쿨한 사이지요. 엄마가 아무리 촌스럽고 무지해 보여도 딸은 영원히 '엄마의 아기'예요. 절에서 엄마와 싸움하는 신에서 수술받으라고 성질내고 달래고 사정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지요. 이 때 나이와 체면을 다 떼어버리니 엄마 앞에선 그저 아기일 뿐이죠."

이 장면은 전북 부안 내소사에서 황혼녘과 새벽녘 4시간 동안 20여 차례나 반복 촬영됐다. NG가 나서라기보다는 신마다 약간씩 다른 감정이 담겨 나중에 최적을 골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눈물과 함께 콧물이 흐르는 비호감 장면을 드러낼 필요도 있었다.

"김영애 선생님은 이 신을 촬영한 후 제게 '연기하는 게 애 낳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애를 안 낳아봐서 잘 모르겠지만 정신 없이 몰입해 연기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거예요. 김 선생님도 긴장한 나머지 체해서 열 손가락과 발가락,혀까지 바늘로 땄어요. 둘 다 완전히 빠져 연기하는 타입이에요. 이제는 예순 살이 다 된 김 선생님과 서른을 넘긴 최강희가 제일 좋은 친구가 됐어요. "

그녀는 경력 15년 만에 연기에 진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연기가 관성으로 굴러갔다면 이제는 재미있게 굴리면서 가고 싶다는 것이다.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결혼엔 당장 관심 없어요. 일과 첫사랑하는 기분이에요. 연예인과 스타 타입이 싫지는 않지만 '배우같은 배우'로 불리는 게 더 좋아요. 기술이 느는 배우가 아니라,힘들더라도 진심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