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통 걸음으로 한 시간에 4㎞ 정도를 간다. 시속 4㎞에 불과하나 꼬박 416일 동안 걸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니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걷기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최선의 운동으로 두뇌 발달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걷는 행복'이란 책에서 '인간의 지성이 걸음에서 잉태됐다'고 썼다. 인류가 500여만년 전 침팬지와 갈라서고 150만년 전쯤부터 서서 걷게 되면서 두개골과 뇌가 급격하게 커졌다는 추론이다. 파칼레는 걷기의 육체적 고통이 쾌락으로 전이된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걸을 때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고통부호를 만드는 신경세포의 뉴런 회로를 차단하고 쾌락을 자극하는 흥분제를 분출시킨다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생활에선 걸을 일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하루 평균 5800여보를 걷는데 그친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걸어야 하는 1만보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1000보 이하로 확 줄어든다. 전업주부의 4500여보에 비해서도 훨씬 적다.

걷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게다. 짬 날 때마다 회사 주변을 걷는 직장인이 늘고 있는가 하면 걷기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대표적인 게 '제주 올레 걷기'다. 올레란 집과 마을을 이어주는 좁은 길을 의미하는 제주 사투리다. 올레 걷기 코스는 제주 동쪽과 남쪽 해안을 따라 13개가 있고, 26일 14번째 코스가 열릴 예정이다. 거리가 평균 17㎞씩이어서 한 코스를 걷는데 5~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난해 3만여명이었던 올레 순례객이 올해는 벌써 13만명을 넘었다니 대단한 반응이다. 여행상품이 여럿 나온 데 이어 걷는 도중 문인들이 시 낭송을 하는 올레 녹색문학투어도 기획됐다. 제주 골프 패키지에 올레 일정이 끼어 있을 정도다. 지리산 치악산 등에서 걷기코스 개발이 붐을 이루는 것도 올레의 영향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보는 데 익숙한 우리 여행문화에서 올레의 인기는 이례적이다. 올레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고급 숙박시설이나 화끈한 이벤트가 아니고 가공되지 않은 제주의 자연일 게다. 다만 여행객이 급증하다 보니 오염이나 과도한 상술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까봐 걱정이다. 걷고 또 걸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올레 순례의 깊은 맛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가꿔나갈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