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장급 인사에 대해 직무정지 수준의 징계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불복할 가능성이 커 징계 적절성 여부와 수위를 놓고 법적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경룡 서강대 교수는 "금융당국이 투자 행위가 진행될 때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과가 나쁜 쪽으로 나오니까 잘잘못을 따져 제재를 하는 것 같다"며 "사후 제재보다 사전적으로 건전성 감독 노력을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뒤늦은 대응이 손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은행 대주주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예금보험공사를 질책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보는 우리금융지주가 지난해 경영이행약정(MOU)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아직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계기로 금융사 경영자들이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오세경 건국대 경영대학장은 "기업에 있어서 투자 당시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사후적 결과만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법 원칙이고 경영 원칙"이라며 "유가증권 투자 손실에 대해 은행장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최고경영자의 고유 의사결정 사안이라는 얘기다.

한 시중 은행장도 "황 회장이 자산 증대를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함으로써 많은 손실을 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어디까지나 경영상 판단이므로 법 위반만 없다면 금융당국이 나서 투자책임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황 회장에 대한 징계를 '변양호 신드롬'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담당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의혹으로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섰으나 무죄판결을 받은 후 결국 무리한 법적용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을 빗댄 것이다.

반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만큼 반드시 책임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사 경영자는 주주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예금 고객에 대한 의무를 고려해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며 "황 회장은 재임 기간 파생상품 투자 이외에 무리한 규모 확장 전략을 추구했고,그것이 오늘날 우리은행의 심각한 부실채권 부담으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