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관계자를 찾아라.''(지붕을) 파괴할까요 말까요. ' 지난해 2월 숭례문 화재 당시 소방 당국의 무전을 통해 오갔다는 말들이다. 불길이 번지는 걸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전소되도록 손을 제대로 못썼다는 것이다.

숭례문 2층 누각지역 화재에 대비한 매뉴얼 부재의 결과다. 재난은 언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모른다. 천재지변과 인재 등 모든 종류의 재난 시 누구나 즉각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꼼꼼하고 상세한 대응 매뉴얼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에선 지진과 테러,전염병 등에 대해 국가는 물론 기업에서도 구체적인 매뉴얼을 작성,수시로 점검한다고 한다. 신종플루에 대해서도 기업마다 후생노동성의 '신종플루 대책 가이드라인'에 따라 업무 마비 등 최악의 사태를 상정한 '업무 지속계획'이란 매뉴얼을 짠다는 것이다.

매뉴얼이 있어야 비상사태에 즉각 대응할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분명해진다. 물론 매뉴얼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미국의 경우 9 · 11 테러 이후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국가사고관리체계(NIMS)와 국가대응계획(NRP)을 완성했지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조정과 협력,통합과 연계 부족이 이유로 꼽혔다. 매뉴얼대로 실천하자면 대응 방법과 절차가 몸에 배도록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매뉴얼도 부족하지만 만들어 놔도 '설마' 하면서 훈련하지 않다가 닥치면 "그러게 내가 뭐랬니"식만 난무한다.

재난 대비 매뉴얼만 아쉬운 것도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토로한다. '업무별로 우선순위와 방법을 정한 매뉴얼이 있었으면.그럼 업무가 바뀔 때 인수인계도 쉽고,전임자 눈치 보는 일도 줄어들고,윗사람한테 일일이 묻지 않아도 돼 좋을 텐데.'

"그런 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을까 걱정돼 묻기 어렵고 물어도 단편적인 것만 가르쳐줘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매뉴얼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탓일 수도 있고,매뉴얼이 너무 세부적이면 역할이 줄어든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재난이 그렇듯 사고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신종플루,자연재해,화재,테러에 대한 것은 물론 업무 매뉴얼도 구체적으로 작성돼야 한다. 그래야 직원 교육도 표준화되고 담당자에게 문제가 생겨도 차질 없는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