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이 무너졌다고 소리치며 누군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다른 사람이 따라 뛰었다. 공포가 순식간에 퍼지며 달리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댐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시 당국의 공식 발표후에야 질서가 잡혀갔다. 두 시간이나 패닉(panic) 상태에 휩싸여 대피하는 소동 끝에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1913년 일어났던 일이다.

집단공포의 극단적 표출인 패닉은 가축의 번식을 주관하는 그리스의 신(神) 판(pan)에서 나왔다. 뿔 달린 험악한 얼굴에 염소의 몸을 갖고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신이다. 그리스인들은 가축들이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판의 장난으로 여겼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본능에 더 의존하는 가축을 공포심과 연결한 것이 그럴 듯하다. 합리적 대응이 아니란 의미도 들어 있다.

사람이 가축보다 이성적이라고 하지만 군중심리에 휩싸일 때는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 냉철한 판단 대신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편안함을 느낀다. 주식시장에서 가끔 일어나는 투매도 비슷한 심리가 작동하는 경우다.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거의 패닉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어 걱정이다. 해외출장만 갔다 와도 직장에서 환자취급을 하는가 하면 가벼운 증상에 거점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급증해 서너 시간씩 기다리는 게 예사라고 한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선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신종플루 예방 · 치료제가 버젓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휴교하는 학교도 갈수록 늘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적기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느긋할 수 만은 없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신종플루 사망률은 30일 기준 0.07% 정도로 사스의 10%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60%보다 훨씬 낮다. 건강한 사람은 감염됐어도 어렵지 않게 회복된다. 손씻기 같은 위생수칙만 잘 지키면 아직까지는 공포에 휩싸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집단공포는 서로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면서 사태를 악화시킨다. 신종플루에 너무 예민해지면 효과적 대응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 이런 때일 수록 이성적 대응이 필요하다. 건물에 불이 났을 때 앞다퉈 도망치다 비상구 자체를 막는 우(愚)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