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출입기자들이 처음 만난 지난 27일 기자간담회 이후 검찰 안팎의 화제는 단연 김 총장의 명함이다. 친필 사인이 들어간 것까지야 개성 있는 명함이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명함 전면에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검찰총장 중 명함에 휴대폰 번호를 넣은 사람은 김 총장이 처음이다.

검찰 간부들은 대체로 명함에 휴대폰 번호를 넣지 않는다. 검사장은 물론이고 부장검사 정도만 돼도 명함에 사무실 번호만 달랑 적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별적으로 휴대폰 번호를 받아 두지 않으면 통화하기가 쉽지 않다. 휴대폰 번호를 모르면 직원을 거쳐야 하는데 대개 '회의 중''출타 중''업무(수사) 중''보고받고(하고)계시는 중'이란 말이 앵무새처럼 들려오기 일쑤다. 이는 검찰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문화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외부 청탁과 각종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검사 직업의 특성 때문에 생긴 문화라는 지적도 있다.

김 총장은 대전고검장 퇴임 후 2~3주가량 '야인'생활을 했다. 그는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후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걸어 들어오며 "(청사가) 참 높더라"고 말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본 검찰이 일반인들에게는 얼마나 다가가기 힘든 존재인가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실제 김 총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공직을 떠났던 그 기간이 총장 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검찰이 변해야 할 때"라며 수사관행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약속했다.

김 총장의 이 같은 사소한 '파격'은 향후 검찰 조직 변화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김 총장의 개혁이 일회성 전시행정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단적인 예가 감찰직 문제다. 김 총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외부공모로 돼 있는 법무부와 대검 감찰직을 검찰 출신이 독식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에대해 김 총장은 "능력과 인품이 중요하다" "외부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적어 안된다" "급여에 대한 기대치가 커서 외부사람을 모시기 힘들다" 등 다소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검찰이 비판받아온 주된 이유는 그들을 견제할 장치가 없었다는 데서 비롯됐다. 김 총장이 명함을 바꾸었듯 감찰직문제도 새 시각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해성 사회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