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잔뜩 취한 채 지하철을 타고 가다 모르는 사람 머리 위에 토사물을 쏟는다. ''여자친구와 야구장에 간 남자가 몰래 가져간 소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곤 엉망으로 취해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끌려가는가 하면 숙취해소약 대신 1회용 샴푸를 먹고 구급차에 실려간다. '

'엽기적인 그녀'에서'해운대'까지 한국영화엔 이처럼 만취해 주사(酒邪)를 부리는 장면이 많다. 실제 2005~09년 한국영화(청소년 관람가) 흥행작 30편을 분석했더니 96%에 음주장면,59%에 '술주정하고 행패 부리는 장면'이 등장했다(다사랑병원 · 다사랑한방병원)는 마당이다.

영화만 그러하랴.지난해 4~11월 국내 TV드라마에선 1회에 0.83회 꼴로 음주장면이 방송됐다는 보고도 있다.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 분석,대한보건협회 '드라마 음주장면 모니터링 자료').또 음주 후엔 툭하면 고성방가 · 욕설에 자살 시도같은 위험행동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를 들이댈 일도 없다. 영화나 드라마 할 것 없이 온통 술이다.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병을 있는대로 쌓아놓고 마시다 몸을 못가누고 쓰러지거나 옆사람과 시비를 붙는 장면,스탠드바나 호텔,심지어 집에서까지 양주를 병째 놓고 물 마시듯 들이키는 장면이 허다하다.

회식과 모임 등으로 안그래도 술 마실 일이 많은데 대중매체까지 나서서 음주를 부추기는 셈이다. 물론 술의 긍정적 효과는 적지 않다. 스트레스 해소,부드러운 분위기 조성,정신적 안정 등.그러나 과음의 폐해는 이루 열거하기 어렵다. 폭력도 문제지만 자살충동은 더 무섭다.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팀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경우 우울하거나 슬플 때 술을 마시면 자살기도 위험이 68%나 높아진다고 돼 있다. 지난해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2006년보다 23% 증가했고,하루 평균 12.7명이 술 때문에 숨지고,자살이 6년째 20~30대 사망원인 1위라는 소식도 있다.

음주뿐이랴.한국영화는 욕설경연장이다. 욕은'학교와 학원에서 교육되고,군대에서 확산되고,또래집단에서 정착되고,인터넷에서 재생산되고,대중매체에서 정당화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지만 모든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른다. 태국 공중파TV에선 음주장면을 아예 모자이크 처리한다고 한다. 영화와 TV 모두 리얼리즘이나 관객 핑계 대지 말고 음주 장면과 욕 좀 줄일 일이다. 제발!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