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연말까지 2만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둥,'현대판 흑사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둥 시일이 지나면서 최악상황을 가정한 전망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인 3명 중 2명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모임과 여행이 줄고,휴교하는 학교도 있다.

지금까지 4000여 명 발생에 3명이 사망했다. 아마도 실제 감염된 환자는 더 많을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나았거나 감기로 알고 치료를 받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염률은 높으나 증세가 약하고 사망률이 낮다. 그런데도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나 1918년 약 5000만명의 생명을 빼앗은 스페인 독감을 연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문가나 언론도 전염병이 유행하면 이런 예를 자주 들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당시엔 전염병의 원인과 감염경로에 대한 지식도 없고,예방백신이나 치료제도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효율적인 방역체계도 없었다. 다만 사체(死體)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 2002년 중국의 광둥성에서 발생해 2003년까지 유행한 SARS(급성 중증호흡기증후군)도 신속한 국제 공조와 항만,공항 등에서의 조치로 확산을 막았다. 세계적으로 9000여 명의 환자 발생에 800명 정도의 사망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로의 유입도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신종플루 환자 수나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데는 언제 어디서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 건강보험제도 덕분도 있을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감염된 사람들이 미리 진료를 통해 요양을 취했기 때문에 사망률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의료보험 혜택 사각지대 인구가 5000만명에 이르는 미국에서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522명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의외로 차분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방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많은 국가들이 백신을 구하려고 해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은 사회 ·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모처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몇 년 전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사회 · 경제적인 손실을 27조원 정도로 추산한 적이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예방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공포감을 불식시키는 일이다. 국민도 정부를 신뢰하고 지도에 따라야 한다. 손을 자주 씻기만 해도 신종플루는 물론 각종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 설사 신종플루에 감염된다 해도 규칙적인 운동과 무리하지 않는 생활태도의 실천으로 면역력을 길러 놓으면 두려워할 것 없다.

근거가 미약한 통계나 보도에 민감해서는 안된다. 최악의 경우 2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은 방역대책이 없을 경우를 가정한 수치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중국 상하이,광둥지역에서 유입된 콜레라로 1만5644명의 환자와 1만181명의 사망자를 낸 일이 있다. 이는 해방 후 혼란기에 전국적인 방역망이 손을 쓸 수 없을 때였다. 국민은 콜레라를 '쥐병'이라 해 문간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는 것이 고작이던 때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방역당국의 활동을 차분히 지켜보는 게 우선이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신종플루의 유행이 끝난 후에도 늦지 않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야 할 때이다.


<신언항 건양대 교수ㆍ보건학/전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