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 ' 2003~04년에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구호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이란 책의 영향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고 돈도 벌고 출세도 한다는 것이다. 고급차를 타는 사람일수록 출근이 빠르다는 자료도 제시됐다.

왜 그런가. 숙면은 체온이 떨어지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뤄지고,사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오전 6~8시에 가장 뛰어나 낮 시간의 3배에 달한다는 설명이었다. 따라서 새벽 1~2시에 잠들어 아침 8시에 겨우 일어나는 야행성 생활을 계속하면 몸과 마음 모두 망가진다고 주장했다.

'현실이 힘들수록 벌떡 일어나라'는 조언까지 곁들여지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아침마다 이불을 뒤집어쓰는 자식들을 깨우느라 전쟁을 치르던 부모들은 물론 날이면 날마다 지각이나 면하는 아랫사람들 때문에 언짢던 직장의 윗사람들 역시 "그렇고 말고"하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어려서부터 밤 늦게 자 버릇한데다 나이 들어선 일과 각종 모임으로 일찍 잘래야 잘 수 없는 젊은층에게 아침형 인간은 처음부터 무리였던 모양이다. 굳은 각오 아래 참새형으로 변신하려던 이들 다수가 얼마 못가 피곤해 못살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직장인 상당수가 서머타임제 반대 이유로'업무시간만 늘어날 것 같아서'와 함께 '생체 리듬이 깨질 것 같아서'를 꼽았다는 발표도 있다. (커리어넷).그런가 하면 2007년엔 '인간의 두뇌활동이 최고조에 달하는 건 저녁'이란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마틴 세일 연구팀의 보고도 나왔다.

결국 아침형 인간 바람은 잦아들고 대신'점심형 인간'이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저녁엔 야근과 회식 때문에 짬을 못내고,아침엔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니 점심시간을 쪼개 운동과 공부 등 자기계발에 힘쓴다는 것이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파는 등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등장했다고 한다.

전같으면 점심시간은 상사나 동료,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혼자 밥 먹고 공부나 운동에 몰두한다는 건 회사나 동료가 더이상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불안 탓일 것이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평생직장은 없고 살아남자면 능력을 키워 몸값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서글픈 자화상이지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