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는 엄청난 대식가입니다.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미역이 자그마치 A4 한 장 크기에 달합니다. 그래서 성게 개체수가 늘어나면 그 일대 바닷속 해조류는 씨가 마르죠.해조류가 사라지면 물고기도 먹을 게 없어 떠납니다. 한 해 100만마리 안팎의 성게를 처리하는 보성무역이 없었다면 동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황폐화됐을 겁니다. "

윤일훈 대표는 "성게는 불가사리와 함께 동해를 황폐화시키는 백화현상의 주범"이라며 "보성무역을 이끌면서 느끼는 자부심 가운데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이 바다 생태계 보호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성게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인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윤 대표이지만,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의 머릿속에 성게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1992년에 자신의 손으로 창업한 무역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사업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석궁과 소형 충전기 등을 수입 판매했습니다. 이후 수출로 눈을 돌려 국산 면도기와 운동화 팩스 등을 남미지역에 내다팔았죠.외환위기 때도 적자를 내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어요. 내 사업을 하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한데 성게가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1998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아버지가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아마도 가업은 아버지 대에서 끝났을 겁니다. "

39세의 나이에 이사 직함을 달고 보성무역에 들어왔지만 윤 대표는 첫 3년 동안 "나는 신입사원이다"란 마음으로 일했다. 틈 나는 대로 화장실 청소도 하고 성게 알도 깠다. 포항 등 산지에서 해녀들이 걷어올린 성게를 트럭에 싣는 일도 평사원과 함께 했다. '밑바닥부터 훑어야 훗날 경영자가 됐을 때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윤 대표가 자진해서 한 것이었다.

언젠가 보성무역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자 처음에는 '낙하산이다','성게의 성자도 모르는 임원이 어디 있느냐'며 적대시하던 임직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윤 대표의 목표는 보성무역을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성게 알 전문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현재 경쟁력이 있거나 앞으로 경쟁력이 있을 만한 품목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강점이 있는 성게 알 시장의 글로벌 지배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에요. 지난해 자체 개발한 성게 알 통조림을 앞세워 일본에 이어 중국 홍콩 호주 독일 시장도 뚫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