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 한국모델협회 부회장 i16key@gmail.com >

절반을 태워먹은 반찬들을 모두 버릴 수 없어 탄 부분을 골라내기도 하고,몇 번을 반복해서 만들어보며 곧 잘할 수 있을거라,좋아질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알차게 배운 한식 기초 요리들.평소 즐겨 먹을 수 있는 달걀찜,말랑콩장,멸치볶음,북어국,쇠고기미역국,갈치조림,두부조림,여름섞박지,버섯전골,된장찌개,간장게장,오징어초무침 등부터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는 녹두전까지.이름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레시피를 벽에 붙여놓고 하나씩 만들어 보았다.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순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부모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 하시는 엄마.정이 많으셔서 그런지 집에 한번 들여놓은 것은 말 못 하는 짐승이든 물건이든 내치지 못 하시는 분.냄비 하나만 봐도 그렇다. 나 같으면 열 번도 더 버렸음직한 오래되고 낡은 것을 고이 사용하신다. 에공…,좀 심하지 않으신가. 여기저기서 선물로 들어온 것들만 해도 많은데 언제 다 쓰시려고….걔내들은 아마도 자신이 쓰일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다 끝내 지쳐서 풀이 죽어 버릴 것이다. 유행도 다 지나 새것의 가치도 없어질 테고 말이다. 흑흑.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젊었을 때는 엄마가 그러시더니 나이가 드시니 아버지가 더 그러신다. 호호.소소한 것들을 세심히 챙기고,필요없어 버리는 것들도 아까워하시는 것이다. 무슨 현상인지….다들 아시려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들,아버지들이 더 연약해지고 여성스러워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물론 모든 면에서 그렇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기초반에서 배운 요리들을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시간을 내 주방을 가까이 해 보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처음 할 때와 다르게 서너 번 반복하니,시간도 줄고 맛도 꽤 안정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렇게 요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언젠가는 쉬워질 거라 확신하지만,그렇게 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엄마는 이 정성,이 고생을 다하시며 우리 5남매를 키우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해진다. 오늘은 뭘 해 먹을까 고민하시고,우리가 "맛있다"하면 기뻐하시던 젊었을 때 엄마의 표정이 머리 속에 스쳐간다. 뚝딱 한 끼를 거뜬히 차려내셨던 엄마.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일거리가 많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그 애씀이 얼마나 크셨는지 알 것 같다. 그것도 매일 세 끼를,휴~.

반찬 투정을 해본 적은 없지만,당연하게 생각하며 덥석덥석 받아먹기만 했던 지난날들.새삼 엄마의 노고가 담긴 밥상에 감사함과 죄송스러움이 교차한다. 엄마,맛있는 음식과 정성으로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