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성 광택의 화염을 내뿜으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하얀 나로호의 발사 장면은 한 폭의 장엄한 그림이었다. 나로호로부터 분출되는 고온 고압의 화염이 발사대 시설에 손상을 주는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회피 기동'을 위해 잠시 기우뚱하면서 표면에 얼어있던 얼음이 파편처럼 쏟아지던 장면도 매력적이었다. 비록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지는 못했지만 '높은 곳에서 흥하는'고흥(高興)의 한려국립해상공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나로호 발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고 감동적이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에게 큰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물론 과학기술위성 2호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주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첨단 기술 개발에서 이 정도의 어려움은 흔히 있는 것이다. 우주 개발은 모든 과정이 낱낱이 드러나 있어서 신경이 더 쓰일 뿐이다. 더욱이 발사체는 인공위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발사체 개발에 관한 한 우리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수준이다.

이번 일로 낙담하거나 좌절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러시아의 발사체를 이용해서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 발사체를 만드는 기술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발사 과정에서의 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수습하는 기술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로 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핵심 기술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아직도 최대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더 큰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지혜와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이번 궤도 진입 실패의 원인은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 어설프게 서두를 일이 절대 아니다. 미국이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을 밝혀내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아무도 사고 원인을 빨리 밝혀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산산이 부서져 버린 우주선의 폭발 원인을 밝혀낸 것은 노벨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의 놀라운 직관 덕분이었다. 과학기술2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해명보다 성공을 위한 확실한 대책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논란을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완성된 액체 로켓을 도입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정책적 판단이었다. 러시아가 최고 수준의 발사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했다. 다른 대안도 없었다. 결국 구입 비용과 기술 이전의 수준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시장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무작정 첨단 기술을 넘겨달라고 할 수도 없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는 불평은 유치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언론을 통해 함부로 들먹이거나 속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발사대를 만들고,발사체를 조립하고,발사 과정에 참여한 것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섣부른 추측과 공연한 논란으로 우리와 러시아 기술진의 사기를 떨어뜨려서는 절대 안된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우리가 반드시 발사체를 직접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이나 독일처럼 발사체 개발을 포기해버린 선진국도 있다. 그러나 인도,브라질,일본,중국처럼 후발국이면서도 발사체를 개발하는 국가도 있다. 무작정 선진국을 따라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장 눈앞의 경제성만을 따졌다면 오늘날 우리의 자동차,조선,반도체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을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발전이 불가능하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우주 개발이 그렇다. 작은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2018년 한국형 발사체로 희망 한국을 우주로 쏘아 보낼 수 있다.

이덕환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