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관리기준 강화..출구전략의 일환
은행 자본적정성..BIS 비율보다 기본자본 중시


금융팀 = 국제 금융위기가 재발하더라도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유동성 관리기준을 강화하고 나섰다.

앞으로 은행들은 위기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없더라도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비상조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한 자기자본 규제가 강화되고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거래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는 파생상품 종합관리시스템도 연내 가동된다.

◇ 은행 유동성 관리 수위 높여
금융당국이 다음 달에 도입하는 '은행 유동성 리스크(위험) 관리기준'은 원화유동성 비율, 외화유동성 비율, 예대율 등 단순히 유동성 지표만으로 관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은행의 유동성 악화를 예방할 수 있는 질적 기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은행들은 이 기준에 따라 자금 조달을 다변화하면서 처분에 제한이 없는 유동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대외 채무나 수신액을 언제든지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3개월마다 해야 하는 한편 영업 전략, 재무상황, 자금조달 능력 등을 반영해 유동성 위험 허용한도를 설정해 운영해야 한다.

또 유동성 위험 관리 목표, 내부통제체계 등을 포함한 유동성 관리 전략을 세워야 하며 이사회는 관리 전략을 검토하면서 수시로 유동성 현황을 보고받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매년 은행의 유동성 관리실태를 점검하고 미흡한 점을 개선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작년 9월 국제 금융위기가 불거졌을 때 한국 은행들의 채무상환 능력이 의심 받으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은행을 통한 시중유동성 공급에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적 노력이 집중됐지만, 자금시장 경색이 상당 부분 완화됨에 따라 출구전략의 하나로 유동성 관리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국제 은행감독기구인 바젤위원회도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악화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목적에서 각국에 유동성 관리기준의 수립을 권고했으며 내년 상반기에 국가별로 관리기준의 적정성을 점검할 예정이다.

◇ 은행 자기자본 규제도 강화
국제 금융위기를 계기로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이 의심받았다.

이에 따라 금융안정위원회(FSB)와 바젤위원회를 중심으로 은행 자기자본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은행의 자본적정성 감독기준으로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며 "기본자본(Tier1)비율과 보통주 중심의 단순자기자본비율(TCE)이 강조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행 BIS 비율은 자기자본으로 보통주, 우선주, 하이브리드증권(신종자본증권) 등 기본자본과 후순위채 등 보완자본을 모두 인정하는데 부채성 자본이 많아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나라별로 Tier1과 TCE를 규정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 연말까지 이를 조율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며 "은행의 위기대응 능력 제고를 위해 지금보다 자기자본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 자기자본 규제의 경기 순응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개선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경기 순응성이란 위험자산에 대해 일정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을 유지하라는 감독기준을 지키려고 은행들이 불황기에는 대출을 줄이고 호황기에는 대출을 늘리는 현상을 말한다.

바젤위원회는 경기상황에 따라 최저 자본 기준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호황기에는 완충자본을 적립하고 불황기에는 이를 완화하거나 소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건전성 규제개선 작업은 국제적 논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다만 국내 은행은 선진국 금융회사보다 Tier1이나 TCE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밝혔다.

◇ 파생상품 종합관리시스템 연말 가동
파생상품의 범람과 이에 대한 미흡한 관리가 국제 금융위기로 원인으로 지목됨에 따라 금융당국은 파생상품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연말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모든 금융기관으로부터 해당 상품과 기초자산, 거래 상대방의 자료를 모아 관리하면서 파생상품이 금융회사의 부실을 가져오거나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지 않도록 조기 경보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거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장외 파생상품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금융회사나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신용평가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신용평가 방법과 모델, 중요 고객의 명단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부적절한 신용평가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투자은행(IB)의 과도한 성과보상체계가 위험한 투자를 조장했다는 지적에 따라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성과보상체계를 합리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국제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정책의 방향 설정을 위해 금융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 보험연구원에 연구 용역도 준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권역별 제도개선 방향과 외환시장, 주식시장, 단기금융시장 등 금융시장별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다음 달 말에는 용역 보고서 초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