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운영에서 적절한 경쟁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고 구성원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는데 있어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은 부서간 협조를 저해해 조직의 총체적 성과를 낮출 수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조직내의 경쟁과 동시에 협조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도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대기업 집단에서의 경영 철학은 협조보다는 경쟁을 강조했다. 유사한 사업을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경쟁적으로 벌이는가 하면,자기 책임 부서의 단기 실적이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우선하고,선 · 후배간 경쟁이 조직내 정보 공유를 저해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또한 핵심 기술로 지원하는 부서보다는 매출을 올리는 부서가 대우를 받는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소프트웨어(SW)기술자들로부터"소프트웨어로는 임원이 안되겠어요. 승진하려면 사업부서로 가서 뛰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런 불합리 속에서도 우리나라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우수 기업으로 계속 성장했던 이유를 그 산업의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우수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하드웨어 제조 중심 업종이었기 때문에 경쟁심의 자극이 생산성 향상에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은 성공은 큰 실패를 불러 올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옛 방식을 고집하면 큰 실패를 부를 수 있다.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기술로서 소프트웨어의 위상이 빨리 변하고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 생산비용이 전 산업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 IT 시장 조사기관인 VDC 자료를 보면,하드웨어 안에 든 소프트웨어의 원가비중은 휴대전화 54.3%,자동차 52.4%,전투기 51.4%,의료기 40.9%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비중이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곧 제품 경쟁력이자 기업의 경쟁력이다. 즉 제품 기능의 우열은 소프트웨어의 기능에 달려있고,기업의 신제품 개발 능력은 그 기업의 소프트웨어 창출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생산성은 공유와 재사용으로 증가한다. 한번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후속 제품에서 재사용하고,또 유사 상품에서 공유함으로써 생산비용 대비 효용가치는 증가한다. 물론 요구사항이 늘어나거나 변화하여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처음부터 백지에서 개발하는 것보다 수정 보완하는 것이 생산성이 높다. 따라서 기업에서 개발해 보유하는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영구히 재사용할 수 있는 고정 자산으로 보아도 된다. 자산으로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전 수명주기에서 따져야 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재사용을 목적으로 할 때 기획설계시부터 모듈개발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가 공유할 목적으로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는 개인이 혼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의 3배의 노력이 소요된다고 교과서에는 쓰여 있다. 이 노력이 다른 사람이 개발한 모듈과 통합돼야 하는 경우에는 또 3배의 노력이 더 소요된다.

기업의 중요 자산으로서 소프트웨어를 공유와 재사용을 위해 기획하고,공유와 재사용이 쉽게 되도록 개발하며,개발된 소프트웨어가 회사 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재사용되도록 경영자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와 시스템,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유하고 협조하는 문화가 경영철학으로 정착돼야 한다.

이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기업 내의 지식과 경험에도 적용돼야 하는 철학이다. 이제 초일류를 꿈꾸는 우리 대기업들도 지식경제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더불어 협조를 강조하는 경영철학이 자리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경영철학 하에서 전문가들이 여러번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대접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진형 <KAIST 교수ㆍ전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