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렬을 미리 예고하고 만난 협상 아니었나요?"

은행권의 올해 마지막 임금협상이 끝난 후인 23일 한 금융권 인사는 한심하다는 듯이 기자에게 반문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으니 결렬시키자는 쪽으로 노사 양측이 '암묵적' 합의를 했다는 비판을 한 것이다.

실제가 그랬다. 마지막 협상이라던 20일, 양측은 '마지막' 이라고 하기에 무색하게 불과 1시간여 만에 협상을 끝냈고 약속한 듯이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은행권 임금 협상이 결렬로 끝이 난 것은 산별교섭으로 전환된 2000년 이후 올해가 처음이지만 노사 양측 모두의 얼굴에서 좌절감이나 낭패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형식상 결렬이지만 내용은 동결"이라며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만족할 수준에서 접점을 찾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용자 대표로 협상에 참여한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더 이상 산별교섭은 의미가 없으며 이제 개별 은행장 및 기관장에게 교섭권을 돌려주겠다"고 말해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더 이상 추가협상이 없다면 올해 은행권 임금협상은 지난해 협상 결과인 '동결'로 갈음한다.

연초까지만 해도 협상 분위기는 '일정 부분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세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분담과 대졸 초임 삭감,임원들 성과급의 자진반납이 이어지면서 정규직 급여도 최소한의 삭감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지배적이었다. 한때 전 직원 임금동결과 연차휴가 사용으로 사실상 일정 수준의 임금반납까지 잠정합의가 이뤄졌으나 삭감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사측의 강력한 요구로 최종합의에 실패했다. 이후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특히 하반기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자 동결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기류 속에서 협상은 지지부진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하지만 올해 임금협상을 상반기가 훨씬 지난 시점까지 끌고 오다가 정부와 여론의 눈치보기에서 형식상 결렬,내용상 동결이라는 타협점을 찾은 협상 결과를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하반기 예상치 못한 상황악화로 은행이 어려워지고,지난해 말처럼 은행의 부실이 국민들의 부담으로 넘어올 때는 은행 노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