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가 좀 빠른 듯하다. 길이 막혀 출발시간이 늦어졌으니 돌아가는 버스를 제 시간에 대기 위해서는 빨리 끌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이 속도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까?

오랜만에 참여한 산길 트레킹이라 내내 걱정이 앞선다. 두문동재에서 시작해 은대봉~중함백을 거쳐 함백산 정상에 오른 뒤 만항재까지 가는 트레킹 길이 결코 쉬운 게 아니어서다.

#은대봉을 향해

두문동재(1268m)에서 은대봉(1442.3m)까지 첫 50분 코스가 난관이다. 내내 오르막이어서 힘들고,눈을 돌릴 데가 그리 많지 않아 지루하기도 한 구간이다. 그나마 힘이 있을 때 오른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다. 키 큰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사라지면서 길섶에 환하게 핀 하얀 어수리꽃이 간간이 눈에 띈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들꽃이라 더 반갑다. 이 구간을 100% 즐기는 법 한 가지는 가끔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것.반대편 금대봉 쪽 능선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멀리 매봉산 쪽의 풍력발전기 풍경도 이채롭다.

은대봉은 들꽃으로 치장한 좁고 둥근 정원 같다. 은대봉 표지석 주위에 갖가지 들꽃이 무리져 피어 있다. 보라색 노루오줌,샛노란 마타리,그리고 키 큰 어수리가 어울려 천상의 화원을 연출한다. 들꽃이란 게 다 그래서 화려한 맛은 덜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은대봉은 나무그늘이 없어 쉼터로서는 빵점이다. 처음부터 된비알을 올라왔겠다,들꽃도 무리지어 피었겠다,쉬어가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한 명도 앉아 쉬는 이가 없는 까닭이다.

은대봉~제1쉼터(1260m)는 30분 코스이며 다시 제2쉼터(1268m)까지도 30분을 잡으면 된다. 도합 2㎞ 구간이지만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 위주여서 부담 없다. 머리를 덮는 나무가 만드는 그늘도 발걸음에 힘을 보태준다.


#함백산의 주목군락

산행로 주변의 땅이 파헤쳐진 데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느라 주둥이로 땅을 들쑤셔댄 흔적이라고 한다. 주홍색 작은 동자꽃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순전히 그 멧돼지들의 보이지 않는 위협 때문이다. 동자꽃은 그렇지 않아도 슬픈 전설 탓에 애처로워 보이지 않는가.

옛날 강원도의 깊은 산에 늙은 스님과 동자가 살았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간 스님은 큰 눈에 길이 막혀 절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동자는 스님을 기다리다 지쳐 몸이 꽁꽁 언 채로 죽었다. 이듬해 봄 눈이 녹아 돌아온 스님은 동자를 얼어붙은 그 자리에 묻었다. 여름이 되자 동자의 무덤에 꽃이 피었는데 그 모습이 스님을 마중하는 동자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동자꽃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제2쉼터에서는 정말 잘 쉬어야 한다. 수분을 보충하고 간식도 먹으며 기력을 보강해야 한다. 제3쉼터인 중함백(1508m)까지와 이어지는 함백산(1572.9m) 정상 구간이 힘든 오르막 코스여서다. 대신 주목과 어울린 산줄기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보상받는다.

이 구간이 힘들다면 함백산 정상까지 가지 않고 옆으로 빠진 뒤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는 방법으로 이동해도 된다. 만항재(1330m)에는 꼭 가봐야 한다. 만항재는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중에서 높은 고개.트레킹 길에서 못 다 맡은 우리 들꽃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어서다.

함백산=글 · 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서울에서 경부ㆍ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감곡나들목~38번 국도~제천~영월~정선~고한~두문동재.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고한으로 간 뒤 택시를 타고 두문동재 정상으로 간다. 수마노탑과 적멸보궁이 있는 정암사,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용연동굴 등을 찾아볼 만하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검룡소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도 좋다.

승우여행사(02-720-8311)는 30일 당일 일정으로 함백산 야생화 트레킹을 떠난다. 서울 광화문(오전 7시30분)과 잠실역(오전 8시)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두문동재로 직행한다. 두문동재~은대봉~함백산~만항재 코스를 5시간가량 걸으며 야생화도 구경한다. 1인당 어른 3만9000원,어린이 3만7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