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보다 스트레스 많고 자살 급증, 현실 직시하고 뚝심있게 대처해야

한국에서 여자,그것도 일하는 여자로 사는 건 힘들다. 엄살이 아니라 통계다. 일단 스트레스가 심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스트레스 환자는 남성의 1.7배에 달한다. 10~50대 전 연령층에서 여자가 많다.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여자가 많고 일하는 쪽은 특히 더 많다.

더 가슴 아픈 수치도 있다. 경찰청의 2004~08년 자살자 현황이 그것이다. 전체 자살자 수는 5년 동안 비슷한데 20대 여성은 두 배 가까이 늘었고 30대 여성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세계적으로 자살은 남자가 여자보다 2~3배 많은 만큼 한국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힘든 걸로 치면 남자가 더하지.집에선 처자식한테 벌벌 떨고,밖에선 윗사람 비위 맞추랴 부하직원들 눈치 보랴 한시도 편할 때가 없는데.남자같으면 꾹 참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에 여자들이 예민하게 굴어서 그렇지."

그런 대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기준으로 남녀 근로자 임금 격차(38%)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평균 18.8%) 중 가장 심하다는 사실은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게 남성 근로자 중 비정규직은 28.8%인데 비해 여성은 40.8%가 비정규직이다.

경제지표 개선 조짐에도 불구,7월 취업자 수(2382만8000명)는 1년 전보다 7만6000명 줄었는데 그 중 96%(7만3000명)가 여성이라는 발표 또한 이 땅 여자들이 처한 현실을 전하고도 남는다. 비정규직 여성들에게 사회적 이슈인 남성 중심의 대기업 노조 파업은 그저 부러운 일일 따름이다.

여성의 경우엔 선망의 대상인 정규직도 길게 보면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마당이다. 외국계 기업은 몰라도 국내 기업의 경우 이런저런 차별을 받기 쉽고 때문에 함께 입사한 남자가 승진할 때 여자는 사직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평균 근속기간만 따져도 남자는 11.7년,여자는 6.8년이다.

오죽하면'사장(社長)되는 남자,사장(死藏)되는 여자'란 말이 생겼을까. 출산과 양육 부담이 주요인이라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디서든 여성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전문성을 쌓기 힘든 부서에 배치하고 비중있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자연히 이렇다할 경력을 쌓기 힘들다.

남성중심적이고 심지어 마초적 팀장을 만나 마음고생을 하다'에잇'하는 수도 적지 않다. 평사원이나 대리 시절 능력을 인정받던 여성이 간부로 승진한 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도 흔하다. 결국 젊어서 잘나가던 여성도 40대에 들어서면 진로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일쑤다.

물론 여성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다고 한다. 책임지는 걸 두려워한다,힘든 일은 피하려 들거나 필요할 때만 여자임을 내세운다,실수하지 않고 완벽하려 애쓰다 정해진 시간을 놓친다,일이 뜻같지 않거나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속으로 삭히기보다 짜증이나 신경질을 낸다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을 지레짐작해 상황 판단을 자의적으로 하거나 혼자 힘으로 안될 때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남자는 상사의 우격다짐이나 터무니 없는 주문 내지 타박도 일 때문이려니 생각,참고 견디는 반면 여자는 감정 문제로 여겨 상처받고 펄펄 뛴다는 지적도 있다.

'여자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상원의원을 거쳐 국무장관이 된 힐러리 클린턴을 놓고'남편은 잘하는데 힐러리는 그렇지 못하다'거나'말실수를 자주 한다''감정 조절을 못한다'는 식의 힐난이 이어진다. 사사건건 남편과 비교당하는 힐러리의 입장이나 심정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은 TV드라마가 아니다. 어이없는 당돌함이 매력으로 통하지도 않고 힘들 때마나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문은 죽어라 두드려야 열리고,기회는 실력에 외교력을 더한 채 끊임없이 도전해야 생긴다. 안그러고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해봤자 징징거린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남자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여자 그것도 일하는 여자로 살자면 실망에 대처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시간관리법과 갈등해결법을 배우고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함도 물론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뚝심 좋게 걸어가면서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 전문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키우는 것만이 살 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