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지독하게 꼬이고, 우왕좌왕하고, 앞도 깜깜 뒤도 깜깜인 분들이 하소연하면 나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권해왔다. 사실 ‘초심’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이 말이 가장 난무할 때는 선거 직후다. 여당도 야당도 ‘국민의 마음을 겸허히 수용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법정에서 나오는 재력가들도 그런 말을 한다. 어찌도 그리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말을 하는지.

그래서 일까. 스포츠고 연예계고 유명했던 스타들이 자칫 삐끗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에도 자숙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다. “과연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합니까?”라고 말이다.

몇 년 전 한 연극연출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최근 대학로 출신으로 유명 스타가 된 영화배우를 다시 연극무대에 세우려다 개런티가 맞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대학로 시절, 정말 어려울 때를 같이 했는데 스타가 된 뒤엔 뵙기도 힘드네요.”

그러면서 그 스타는 술만 마시면 후배들에게 “스타가 될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질책한다는 것. 라면도 못 먹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개런티와 초심은 멀기만하다.

한 유명 스포츠 스타도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대스타였지만 몸값에 비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번번이 팬들을 실망시키자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굳은 각오를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의 실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천천히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비단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스타나 유명인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도 연초가 되면 굳은 목표를 세우고, 시간이 지나서는 초심을 되새기는 게 보통이다. 금연, 금주, 절약, 성실 등등.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치고 진짜 초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드믈다. 왜야하면 이미 초심의 시간은 지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먹었던 마음을 발판으로 성공의 단맛을 본 사람들이다. 정상에 섰던 사람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려면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때문에 초심, 초심 하는데 진짜 처음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기란 초심을 먹었을 때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의상대사가 남긴 법성계에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먹은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라는 얘기다. 얼마나 ‘초심’이라는 게 어려우면 ‘부처님 마음’에 비견할까.

초심이 어디에 있을까 고심할 필요없다. 초심은 따로 없다. 결연한 마음을 먹으면 그순간이 바로 초심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슬럼프에 빠져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제2의 전성기는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과거가 아닌 현재의 초심이 필요한 것이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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