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잠시 쉬어가는 벤치처럼

서울 사옥으로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 평균 두 번 이상 들르는 곳이 있다. 사옥 2층에 있는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갤러리이다. 논현동 신사옥을 세울 때 특별히 신경썼던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비워지는 듯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 이제는 습관처럼 됐다. 애초에 이 갤러리를 사옥 내에 설치한 의도는 기업 문화 마케팅 차원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일반 대중에게도 일상에서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선사하고자 함이었는데,이제와 생각해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된 셈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왕비 예술센터에는 피카소의 필생의 대작이라 일컫는 '게르니카'가 소장돼 있다. 이 작품은 멀리서 봐도 독특해 보인다.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 앞에만 유독 벤치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쉬엄쉬엄 곱씹으라는 의미인지,단순히 잠시 쉬었다 가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작품을 오래 감상하라는 배려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기업의 문화 마케팅 역시 그 출발점은 이러한 배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화 마케팅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은 다소 딱딱하고 차가울 수 있는 기업 이미지가 문화라는 감성 요소를 통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길 기대한다. 물론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의 심정을 공감하지만,고객으로부터 제대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큰 문화행사를 치르고 그 행사에서 회사 CI나 브랜드를 몇 번 노출하느냐 하는 경제성이나 효율성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오히려 '게르니카' 앞의 벤치처럼,작고 소박하더라도 진심어린 배려가 전해져야 비로소 그 기업도 기억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르니카'를 흉내내려 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회사 사옥 앞에 조각상이 걸터 앉아 있는 조그만 벤치를 전시했던 적이 있다. 전시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었지만,그냥 길을 걸어가던 주부나 직장인들이 잠시 쉬어가는 벤치로 보고 앉아 자그마한 여유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 주었고 심지어 교대로 앉아 사진까지 찍는 모습이 흐뭇하기까지 했다.

전시가 끝나고 그 벤치 작품을 회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많이 망설이다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 작품 가격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올초부터 대대적 경비절감을 외치는 회사가 한편에서는 작품 구입에 그만한 돈을 쓴다는 것이 어떻게 비쳐질지 몰라서였다. 그런데 그 벤치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많이 크다. 퇴근할 때의 내 즐거움이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그 자리를 즐겨 찾던 사람들에게 괜히 회사가 야박한 짓이라도 한 것 같은 미안함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그 작품을 구입해야 하나.


박종욱 < 로얄&컴퍼니(옛 로얄TOTO) 대표 · jwpark@iroya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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