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8 · 15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제안했다. 만약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한다면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향상 분야에 걸쳐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남북경제공동체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 · 개방 · 3000정책과 골자를 같이 하는 것으로 그 이름과 달리 신(新)구상이 아니다. 새로운 점은 북한과 관련된 길지 않은 내용에서'대화 혹은 논의'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언급되는 등 북한에 대한 제의의 톤이 크게 부드러워졌다는 점이다.

문제는 톤이 부드럽게 바뀌었다고 해서 북한이 이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축사의 모두에 북녘 동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북한 당국에 대해서도 "간곡히" "진심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이 제의의 진정성에 무게를 더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 주민이 살 길은 시장경제화와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김정일 정권에게는 이는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질상 새롭지 않은'새로운 평화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실망스러운 제안이다. 최근 북한이 더 이상의 도발과 남한에 대한 비방을 자제하는 가운데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유씨를 석방한 것은 남한과 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하는 북한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전에 없이 강경한 중국의 대북정책과 오바마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사면초가에 처해 있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한국이 이에 동조한다면 북한을 더 곤경에 몰아붙이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그 결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비핵화와 개방 없이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논리는 오히려 북한 경제의 성장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의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바로 그것이다. 건강한 사람,교육받은 인력,시장경제를 수용하고 만들어가는 능력이 없이는 북한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구상이 새로워지려면 북한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남북한의 꾸준한 접촉과 교류가 없이는 힘들다. 따라서 적어도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의 창을 더 확대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경제나 법 전문가들의 육성을 획기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전문가나 인재들을 외국에서 연수,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은 북한의 학교 교육을 도와야 한다. 현재 북한 학생들의 30~40%가 초등 혹은 중등 교육을 받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학교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이 거의 없어 학교가 그 부담을 부모들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상당수가 하루 강냉이 죽 한 끼를 먹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들에게 학교 교육은 사치재인 셈이다. 그리고 북한 주민의 최소한의 생존 보장은 이들의 신체를 건강하게 보존해 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인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는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지원이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경제 성장이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장차 남한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 수십, 수백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북한 경제를 살리고 한반도의 평화구상이 진정으로 새로워지려면 북한 주민의 생존과 학교 교육, 그리고 전문가 육성에 대한 지원 안이 비핵화에 관계없이 반드시 담겨져야 할 것이다.

김병연 < 서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