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시 남북관계 빠른 진전 난망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4일 세 번째로 북한 체류 일정을 연장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은 이날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10일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했던 현 회장은 귀환을 다시 15일로 늦춤에 따라 14일 중 김 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11시까지 현 회장과 김 위원장 간 회동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으며 현 회장은 추가의 체류 연장 신청도 내지 않았다.

현 회장이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는 소식과 현 회장 방북 일정이 하루 더 연장됐다는 소식이 나온 이날 오전만 해도 면담 성사 가능성은 커 보였다.

김양건 부장과의 회동은 김 위원장 면담에 앞선 사전 조율로 비쳤다.

그러나 이날도 면담이 불발하고 북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적시적인 정보가 나오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두 사람의 면담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가지 정도다.

우선 현 회장이 김 위원장과 15일 오전 짧게 회동하고 당일 귀환할 수 있다.

북한이 현 회장을 부른 이상 대남사업의 오랜 파트너인 현대가(家)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현 회장이 체류기간을 하루 더 연장, 15일 오후 김 위원장과 만난 뒤 16일 돌아오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쪽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이 내 놓을 8.15 경축사의 대북 메시지를 본 뒤 현 회장에게 모종의 대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어떤 형태로든 현 회장과 만나 전향적인 대남 메시지를 보낼 경우 이는 억류 근로자 유씨 석방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일정 정도 타개해 보겠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반대로 현 회장과 김 위원장 간 회동이 끝내 성사되지 않는 마지막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체류기간을 세번이나 연장하면서까지 면담을 기다리는 현 회장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자 일종의 `결례'로 평가되겠지만 이제는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가 됐다.

이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김 위원장으로선 `북미대화 촉진에 도움이 되도록 한국인 억류 근로자를 석방하는 선의를 보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남북관계를 단번에 전면적으로 풀 생각은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측은 어떤 예단도 하지 않고 있다.

현 회장으로선 김 위원장을 못 만나더라도 자신의 방북을 계기로 13일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의 석방을 이끌어 내고 대남라인의 실세인 김양건 부장과 만났다는 점에서 나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남북관계 측면에서 현 회장 방북의 의미는 관계 전환의 `시발점'이라기 보다는 유씨 문제라는 `1차 장애물 제거'로 국한될 공산이 커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