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 나흘째인 13일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현 회장의 이번 평양행이 '빈손' 위기를 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 회장은 자신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장기 억류됐던 유성진씨를 귀환시키는 1차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위기에 처한 현대아산의 대북 사업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

북한이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개성공단 토지임대료와 임금문제, 통행제한 조치로 중단된 개성관광 재개 문제, 작년 남한 관광객의 피격사망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이 그것들로, 북한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회장이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부장을 면담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현대그룹의 요구와 간접적으론 남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김양건 부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남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하고 정상회담에 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전했으며 정상회담 이후에도 김 위원장의 특사로 남한을 방문했었다.

김 부장은 특히 오랜 기간 노동당 국제부장으로 활동해 대미관계를 포함해 국제문제에도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방위원회 참사로서 북핵 6자회담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남북관계 단절 후 대남라인이 전반적으로 찬바람을 맞을 때도 건재할 정도로 김정일 위원장의 신뢰가 커서 김 위원장에 대한 직보가 가능한 인물로 현대 정 회장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직접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김 부장을 만난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고위관리는 "그는 6자회담 진행상황, 미국 정세 등에 대해 막힘이 없었다"며 "차분하고 분석적인 참모형 인물로 김 위원장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양건 부장이 현정은 회장을 만난 것은 현 회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성사를 예고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부장이 현 회장과 현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조율해 놓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김양건 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듣고 정리된 입장을 갖고 현 회장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과거에도 남측 인사들의 김 위원장 면담 때는 면담에 앞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통일전선부장 등이 사전에 남측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특히 현정은 회장이 14일 또 다시 북한 체류를 하루 더 연장한 것은 김양건 부장으로부터 김 위원장 면담 가능성을 귀띔받은 데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현 회장이 방북 나흘째인 13일까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은 현대와 북측간 현안 조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만큼 귀환 일정을 늦췄다고 해서 면담 성사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03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했던 임동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김용순 통전부장 등과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친서까지 전달했지만 조율에 실패하면서 김 위원장과 면담은 불발됐었다.

따라서 현 회장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여부는 현 회장과 북측간 현안에 관한 사전조율 결과에 달려 있으며, 이에는 남한 정부의 측면 지원 여부와 그 내용도 큰 작용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현정은 회장이 평양에 체류하면서 받은 감과 김양건 부장과의 대화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 성사를 위해 체류기간을 연장했을 것"이라며 "면담이 이뤄진다면 북측에서도 현대아산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