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부분

어머니는 뭔가 내다 파셨습니다. 콩나물과 깻잎을 팔고,고추와 가지를 시장에 내놓으셨습니다. 그 대가로 자식을 키웠습니다. 손마디에 굳은 살이 생겨나고,얼굴에 검버섯이 돋고 주름이 깊게 패인 사연이지요. 어머니는 장삿속만 챙기지 않았습니다. 콩나물과 깻잎에 진달래꽃물,초록꽃물을 덤으로 얻어주신 겁니다. 굳은 살과 주름은 이렇듯 어머니가 인생을 완전 연소시킨 흔적입니다. 세상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셨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