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 사흘째인 12일에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과의 11일 면담이 불발되면서 이날 면담이 예상됐지만 성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이날 만나지 못했다면 빅딜에 진통을 겪고 있거나 '길들이기' 차원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함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1일 함흥의 해군대학을 시찰한 데 이어 12일 군부 실세들과 한가하게 연극을 관람하는 등 현 회장과의 면담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과거에도 김 위원장이 방북한 남측 인사를 지방으로 불러 만난 전례가 있는 만큼 현 회장이 방북 마지막 날인 13일 김 위원장과 전격적인 만남을 가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현 회장 일행이 김 위원장을 면담하기 위해 북측이 제공한 항공편을 통해 함흥으로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날 오후까지는 평양에 머문것으로 확인됐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마지막까지 유모씨를 대남카드로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애타는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김 위원장이) 남측을 길들이는 차원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도 없지 않지만 결국 면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 회장을 평양에 부를 때는 이미 현 회장을 통해 우리 정부에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북측의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남측 인사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평양에 있다가 원산이나 함흥 등 김 위원장의 소재지로 이동한 전례가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방북해 평양에 머물다가 북한이 제공한 항공편을 이용,원산의 동해 함대 해군기지에서 김 위원장을 면담한 적이 있다.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 때는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이 열차와 승용차를 번갈아 이용하며 김 위원장이 있던 함흥에서 만났다. 따라서 현 회장의 방북 일정 마지막 날인 13일 오찬을 겸한 자리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통일부 관계자는 "서울~평양 간 교신 수단이 마땅히 없는 데다 현 회장 방북 일정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현 회장의 방북 성과에 미칠 영향을 속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