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보였던 11일 김 위원장은 평양이 아닌 함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를 모았던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이 늦어지자 북측이 현대와 남측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함흥에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2일 새벽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 함흥에 위치한 김정숙해군대학의 주요 시설을 둘러보았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시찰에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리영호 총참모장 등 군 인사들이 대거 동행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의 북한 체류 연장은 김 위원장의 일정 변수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의 군부대 공개시찰은 최소 한 달 전에 확정되는 데다 함흥이 평양에서 상당히 멀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일정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흥은 평양에서 200㎞가량 떨어져 있다.

북한 당국도 최고위급 귀빈들이 묵는 '백화원 초대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현 회장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현 회장을 예우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협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연기한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애태우기'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김 위원장의 최종 사인을 받기 전 실무협상 단계에서 남북 간 이견이 생기자 일부러 시간을 끌며 현대와 남측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우리 정부는 북한 체류 일정이 연장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만큼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작년 10월 북한과의 핵 검증 협의를 위해 방북했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 체류 일정을 당초 1박2일에서 2박3일로 연장한 적이 있다. 또 2007년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하루 더 체류할 것을 제의했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거부로 우리 대표단은 당초 합의한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귀환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서울~평양 간 교신 수단이 마땅히 없는 데다 일정 연장 자체가 현 회장의 방북 성과에 미칠 영향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 회장이 직접 함흥으로 달려가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4일 김 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뜬히 소화했지만 그의 건강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아서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