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의 발생 에이즈의 첫 이름은 ‘동성애자관련면역결핍증’ (GRID: Gay-Related Immune Deficiency)이었다. 1981년 6월5일 미국 연방질병통제센터(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는 LA에 거주하는 남성동성애자 5명이 희귀한 폐질환인 뉴모시스티스 카리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검사를 받은 이들 중 세명이 면역기능 저하 현상을 보이다 사망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의 젊은 남성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다. 언론은 ‘동성애자암’(Gay Cancer)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이 증상은 혈우병 환자,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 심지어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났고 혈액과 정액의 교환을 통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1982년 비로소 이 증상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란 이름을 얻었다. 1983년, 프랑스의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가 에이즈의 원인균인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를 세계 처음으로 혈액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는 HIV가 일반 유전정보 전달 방식과 정반대인 역전사 방식을 통해 번식한다는 점과, 대량 바이러스 복제를 통해 임파구 세포를 손상시켜 면역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특성을 찾아냈다. HIV는 1983년 HIV-1 형, 1986년에 HIV-2 형이 발견되었으며 최근에는 HIV-O 형도 발견되었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이후로 1981년부터 2007년의 기간 동안, 에이즈는 2천 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7년까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세계의 3천3백만 명의 인구가 HIV보균자로, 현대까지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남아있다. 또한 최근, 항레트로 바이러스 치료제의 발전과 전세계적 관리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2007년까지 약3천3백만명의 사람이 사망했고 그 중의 약 27만명은 아동들이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에이즈를 알게된 것은 1985년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숨지면서부터다. LA레이커스를 다섯 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던 NBA 최고의 선수였던 메직 존슨도 1991년 HIV 양성판정을 받고 은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는 꾸준한 치료와 관리로 18년이 지난 지금, 3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이자 자선사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직 존슨의 사례는 에이즈는 걸리면 죽는 병이라는 것은 잘못된 상식임을 일깨워 주었다. 1985년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한 뒤 큰 충격을 받은 리즈 테일러는 수천만달러의 재산을 쏟아부어 미국에이즈재단 (AMFAR)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기금을 설립, 에이즈 예방과 치료법 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후 에이즈를 누르기 위한 미국 정부의 본격적인 대책 마련과 예산 배정은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 1988년, 런던에서 개최된 전세계 보건부 장관들의 에이즈특별회의에서 ‘세계에이즈의 날’이 제정되면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전세적인 노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국제기구 중 하나인 UNAIDS는 각 국가들의 에이즈 관리 및 예방사업을 돕기 위해 1996년 1월 창설된 UN산하의 에이즈 전담기구이다. UNAIDS는 각 국가에 에이즈에 대한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HIV 확산 방지와 감염인이나 그로 인한 피해자을 위한 돌보기 및 지원활동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비영리기구로서 안전성, 효율성, 접근성, 예방효과를 갖춘 HIV 백신을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국제에이즈백신추진본부(The International AIDS Vaccine Initiative, IAVI)도 1996년에 설립되었다. 24개국에서 지부를 운영하는 국제에이즈백신추진본부는 협력업체 네트워크와 함께 후보 백신을 연구 및 개발하고 있으며 많은 개인 및 단체, 국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에이즈 치료을 위한 인류의 도전 언제 에이즈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의학계에서는 침팬지에서 발견되는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에서 HIV가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출현 시기를 1930년대로 보고 있다. HIV의 구조는 다른 레트로바이러스와 다르며 아주 복잡하다. 표면은 울퉁불퉁한 구형이며, 지름은 약 120nm으로 적혈구보다 60배 정도 작아서 1억 마리를 똘똘 뭉쳐 바늘끝에 올려놓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HIV는 레트로바이러스에 속하는데 레트로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침입하여 자신의 RNA를 DNA로 역전사 한 후 숙주 세포의 DNA에 끼여 들어가 증식한다. 특히 역전사 과정을 일으키는 역전사효소는 일반적인 DNA 복제 효소와는 달리 오류정정기능이 없기 때문에 많은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되어 HIV는 매우 쉽게 변이된다. 임상연구에서도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가 여러가지 변종의 HIV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 HIV 감염자의 50~70%는 감염 후 3~6주 뒤 독감과 유사한 급성 임상 증후군을 앓게 된다. 그러나, HIV 감염자는 그 이후 짧으면 3년에서 길면 12년까지 무증상 상태를 보이므로 곧바로 HIV 감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며, 에이즈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이미 신체의 면역 체계가 약화될 대로 약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를 완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치료 방법에 대한 논란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1995년에 시작된 일종의 칵테일 요법인 고활성 항바이러스 요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이하 HAART 요법)이 HIV 질환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데에 획기적인 성과를 나타내면서, 에이즈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조절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항바이러스제제를 이용한 에이즈 치료의 경우 장기간의 약물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 약물에 저항하는 내성 바이러스의 출현, 인체 내에 약물이 작용하지 않는 약물성역의 존재, 고가의 치료비 부담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았있다. 이러한 항바이러스제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전세계의 많은 연구자와 기업들은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제거하는 항체를 체내에서 생산함으로써 HI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HIV백신 개발에 대한 연구는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백신을 이용한 인간이나 동물에서의 항체 형성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가장 앞서 나갔지만 임상 3상에서 최종 실패한 Vaxgen이 개발한 gp120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AIDSVax 백신과, 가장 유망한 것으로 손꼽히던 머크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 및 아데노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의 2007년 9월 임상 2상 중단 사례였다. 이러한 백신 시험의 실패로 과학자들은 세포성 면역유도에 의해 에이즈 감염을 예방할 것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후에 계획되었던 백신들의 임상 시험들이 규모를 줄이거나 취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백신 개발이 답보상태에 이르자 Microbicides, Oral pre-exposure prophylaxis(PrEP), 그리고 동성애 남성들의 포경수술 프로그램 등 에이즈 예방을 위한 보다 다양한 방법의 임상시험이 진행 되었거나 진행 중이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결국 이상의 임상시험의 실패로 연구자들은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닌 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으며, 기초연구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에이즈 정복을 위한 백신 개발 백신 개발을 통한 에이즈 정복은 불가능한 미션인가? HIV가 발견된지 25년이나 지났지만 백신을 개발했단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고, 일부 전문가들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백신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반면, HIV 발견으로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바레시누시 교수와 뤽 몽타니에프랑스 박사는 에이즈백신 개발이 조만간 성공할 것이라며 상반된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에이즈 정복과 관련하여 그 시기에 대한 논란도 많고, 접근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지만 백신 개발을 통한 에이즈 정복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IAVI 통계에 따르면 2009년 7월 기준으로 28건의 백신 후보물질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들 후보물질 대다수는 머크사가 채택했던 전략인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류의 기술을 이용한 백신으로 파악된다. 어떤 구조의 후보물질이 효과적인 백신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지에 대해서 예측조차 어려운 실정에서, 유전자 재조합기술에 대해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에이즈 백신개발을 위한 한국인 과학자의 아이디어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캐나다 UWO (The 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의과대학의 면역학 및 미생물학 교수로 재임중인 강칠용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강박사는 소아마비 백신 등 다른 질환 분야에서 시도되어 성공적으로 사용되어온 전래의 지혜(Conventional Wisdom)인 사백신의 개념을 에이즈 백신 개발에 접목시키는 최초의 시도를 하였다. 즉 인체내에서 HIV의 어떤 부분이 효과적으로 항체를 유도하는가를 모르는 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유전자 조작을 거친 전체 에이즈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배양한 이후, 화학적인 방법과 방사능을 사용한 방법을 사용하여 죽인 바이러스 그 자체(사백신, killed whole virus vaccine)를 백신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2005년 8월에 미국 UC Davis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의 영장류 전문 실험센터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면역원성 시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원숭이에서 항체의 생산 및 바이러스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현재까지 미국, 한국, 인도, 중국, 아프리카, 유럽 등을 비롯하여 세계 70개국의 특허를 취득하였다. 1993년에만 해도 평균 생존기간이 7년에 불과했던 에이즈는 사형선고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약 20여 가지의 항바이러스제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평균 생존기간이 24년으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에이즈가 한낱 만성질환의 지위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에이즈 치료에 소요되는 치료비용은 비싼 약값으로 인해 1인당 평균 61만 8천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경제적 부담이 클 뿐더러, 감염자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인류의 에이즈 정복을 위한 마지막 희망은 효과가 탁월한 백신 개발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계 인류가 염원하는 에이즈 정복의 길! 이를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많은 개인과 단체가 국적을 초월한 경제적, 조직적 협력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에이즈 백신 개발이라는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창의적인 한국인 과학자와 기업이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도 떳떳하다. 강박사와 스마젠의 노력이 백신성공으로 이어지는 날, 그래서 온 인류가 에이즈로 부터 해방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희망해 본다.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