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쓰쓰미공장.5326명의 직원들이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한창이다. 가만 보니 똑같은 부품을 끼우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기계처럼 조립하고 있다. 1라인에서만 생산되는 자동차가 4종.대표적인 것이 최근 일본 최고의 인기 차종으로 떠오른 하이브리드 카 '3세대 프리우스'다.

자동차업계의 화두는 '그린 카'다. 프리우스를 만드는 도요타를 비롯해 세계의 내로라하는 자동차회사들이 앞다퉈 그린 카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 · 기아차도 액화석유가스(LPG)형 하이브리드 카를 내놓으며 그린 카 경쟁에 합류했다.

대중화 단계 들어선 하이브리드 카

그린 카 경쟁에서 가장 앞선 건 하이브리드 카다. 석유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도요타가 1세대 프리우스를 출시하면서부터다. 도요타는 이후 2세대 프리우스와 3세대 프리우스를 차례로 내놓으며 하이브리드 카의 대중화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도요타가 판매한 프리우스는 180만대에 이른다.

올 들어 도요타와 혼다가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하이브리드 카의 대중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불은 혼다가 붙였다. 혼다는 지난 2월 신형 '인사이트' 가격을 당시 경쟁 모델이던 2세대 프리우스보다 45만엔 싼 대당 189만엔(최저 가격)까지 낮췄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인사이트는 지난 4월 하이브리드 카로는 처음으로 일본시장 판매 1위 모델로 부상했다.

도요타는 지난 5월 3세대 프리우스를 2세대보다 28만엔 싼 205만엔(최저 가격)으로 출시하며 반격에 들어갔다. '원조'의 위력은 대단했다. 3세대 프리우스는 5월부터 7월까지 석 달 연속 일본 판매 1위를 차지하면서 프리우스 돌풍을 재현했다. 지금 주문해도 8개월 뒤에나 받게 되지만 주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 카는 점유율이 2.7%로 높아질 정도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 역시 '아반떼 LPi' '포르테 LPi'를 차례로 내놓으며 국내 하이브리드 카 시대를 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유럽 메이커들은 디젤 하이브리드에 이어 가솔린 하이브리드 개발에 동참했다.

JP모건은 글로벌 하이브리드 카 판매량이 2020년 1128만대로 작년의 23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를 기점으로 대중화 단계로 본격 접어들 전망"(최상원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반격 나선 전기자동차

전기로만 운행하는 전기차는 하이브리드 카보다 먼저 선보였다. 주인공은 미국의 GM이다. 1996년 전기차 'EV-1' 3000여대를 내놓으면서 새시대를 여는 듯했다. 그렇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주행 거리와 배터리 충전 시간,비용 문제 등으로 소비자들이 철저히 외면한 탓이다. GM은 결국 2003년께 전량 되사들여 폐기 처분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전기차에 대한 GM의 애착은 대단하다. 금융 위기로 생사의 기로에 내몰렸던 GM은 내년에 선보일 전기차인 '시보레 볼트'를 회생을 위한 승부수로 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도 전기차에 250억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시보레 볼트가 성공할 경우 전기차의 상용화 시대가 한발 앞당겨질 전망이다.

하이브리드 카 경쟁에서 밀린 일본 3,4위 자동차 메이커들도 전기차에서 승부수를 찾고 있다. 미쓰비시는 지난달부터 순수 전기차 '아이미브(i-MiEV)' 양산을 시작했다. 닛산은 이달 초 순수 전기차 '리프(LEAF)'를 공개하고 내년부터 판매하기로 했다. 스바루는 순수 전기차 '스텔라'를 곧 공개할 방침이다.

워런 버핏이 3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잘 알려진 중국 업체 BYD도 작년 말 세계 최초의 순수 전기차 'F3DM'을 출시했다. 유럽의 르노도 전기자동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도요타 역시 2012년 전기차 출시 계획을 세우는 등 대응에 나섰다.

전기차는 배기 가스가 전혀 없고 유지비가 매우 싸다는 점이 강점이다. 반면 차값이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미쓰비시 아이미브의 일본 내 판매 가격은 대당 459만엔으로 3세대 프리우스의 2배 수준이다. 또 △주행 거리가 제한돼 있는 데다 △배터리 충전 시간이 길고 △급속 충전소 등 인프라가 부족한 점도 전기차 확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기차는 당분간 가정주부 등이 주로 활용하는 '세컨드 카'로 자리 매김하다가 인프라 발전 정도에 따라 대중화 시기가 결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투자 늘리는 연료전지차

하이브리드 카와 전기차만 그린 카인 것은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연료를 적게 쓰는 자동차는 그린 카로 분류한다. 연료 전지로 운행하는 연료전지 차와 에탄올 카,클린 디젤차 등도 포함된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연료전지차.수소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시켜 운행하는 자동차다. 배기 가스 배출이 전혀 없어 그린 카 경쟁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상당수 자동차 메이커들은 연료전지차 개발에도 착수했다. 현대 · 기아차도 전기차보다는 연료전지차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000대를 조기 상용화한 뒤 2018년엔 3만대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도요타도 2015년 연료전지차를 선보인다는 계획 아래 개발에 들어갔다. GM과 BMW 등도 연료전지차 개발을 시작했다.

연료전지차의 가장 큰 단점은 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현재 기술로도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기존 자동차보다 10배가량 비싸 시장성이 없다. 기술이 발전해 값이 떨어지기 전에는 대중화가 힘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년은 지나야 연료전지차의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사탕수수에서 뽑아 낸 에탄올로 차를 운행하는 에탄올 카도 남미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클린 디젤차는 BMW 벤츠 등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린 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체 간 글로벌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일본 업체를 추격하기 위해 GM은 다임러 및 BMW와 제휴,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와 프랑스 푸조-시트로앵도 하이브리드 엔진을 공동 개발 · 생산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최근 맺었다. 전기차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해 폭스바겐은 중국 BYD와 제휴를 맺었고 다임러그룹은 지난 5월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러의 지분 10%를 확보했다.

도요타시(일본)=박동휘/이상열 기자 donghuip@hankyung.com